[씨네리뷰]'사랑할테면 사랑해봐'…소꿉친구 사랑에 빠지다

  • 입력 2004년 2월 3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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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테면 사랑해봐(러브 미 이프 유 대어)’란 뜻의 발칙한 영어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사실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영화다. 프랑스산인 이 영화의 원제목은 ‘아이들의 장난감(Jeux D'enfants)’.

여덟 살 동갑내기인 줄리앙과 소피는 장난감이자 소중한 보물인 사탕상자를 굴려가며 내기를 즐기는 소꿉친구. 운전사가 없는 버스를 출발시키고 장난을 꾸짖는 선생님 앞에서 오줌을 내지르는 엽기적인 내기와 장난을 일삼는다. 줄리앙의 어머니가 암으로 죽어가는 과정에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신경증적인 태도는 극에 이르고, 줄리앙과 소피는 더 끔찍한 내기에 빠져든다.

성인이 되자 서로에 대한 이끌림이 사랑 때문인지 내기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 헷갈려하는 그들은 결국 절교를 선언한다. 그 10년 뒤 어느 날, 다른 여성과 결혼한 줄리앙에게 내기의 신호탄인 사탕상자가 배달된다.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이너 출신 얀 사뮤엘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이야기와 감각적이고 빠른 장면전환이 정면충돌한다. 느림과 빠름이 이종(異種) 교배돼 탄생하는 이미지는 예쁘고 웃기는 동시에 끔찍하다. 브래지어와 팬티를 옷 밖으로 내어 입으며 용기를 시험하는 그들의 엽기적인 ‘내기 행각’은 학대와 결핍으로 얼룩진 현실로부터 만화 같은 판타지의 세계로 도피하기 위한 일종의 편도 티켓이다. 심지어 그 내기가 상대의 결혼을 망쳐놓는 등 할퀴고 물어뜯고 짓밟는 행위로 바뀔지라도.

이 영화는 조역을 절제하고 모든 장면에 주인공 남녀를 등장시켜 집중력을 높인다. 여기에 빠른 장면전환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俯瞰) 촬영으로 마치 ‘러브스토리’의 초현실주의 버전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내기’의 장막을 부수고 결국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는 줄리앙과 소피가 사랑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내리는 끔찍한 선택은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동시에 귀엽고 아름답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기’라는 잔혹한 소용돌이에 그들은 운명적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인 소피’ 역으로 나오는 마리옹 코티아르의 연기와 외모는 전작(前作) ‘택시’에서보다 더 귀엽고 섹시하다. ‘성인 줄리앙’ 역의 기욤 카네는 ‘비독’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상과 비정상을 넘나드는 분열적인 눈빛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줄리앙과 소피를 각기 사랑했던 그들의 아내 혹은 남편의 존재는 두 남녀의 불타는 사랑 속에 어느 순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인 양 증발해 버린다는 점이다. 하긴 이 영화가 일찌감치 말했지. 사랑과 학대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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