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좋은 걸 어떡해"…'팬덤' 열풍

입력 2003-12-25 17:22수정 2009-09-2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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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DVD로 출시된 TV드라마 '다모'.
▼TV드라마 '완전한 사랑'의 팬들이 드라마 장면과 배우들의 사인 등을 모아 만든 완사신문.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팬클럽인 '지구수호단' 홈페이지.

《“이년 입궐하였소. 여기는 외롭지 않아서 정말 행복하오∼!…하루에도 수십번 놀러오는데, 그래도 자려고 하면 생각이 나오. 이런 증세가…평생 될 것 같소. 좋은 것이오, 나쁜 것이오?” (‘다모’ 카페 게시글 중에서)

올 하반기 인터넷에 ‘폐인(특정 대상에 푹 빠진 마니아를 뜻하는 신조어)열풍’을 불러온 MBC 드라마 ‘다모’. 종영된 지 석 달이 훨씬 지났는데도 다모 폐인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팬 모임인 ‘다모아클럽’은 27일 서울 종로구 허리우드극장에서 ‘다모’ 3, 4회를 대형 스크린으로 함께 보는 영상회를 연다. 이 클럽의 회원은 8만2000여명.

18만명의 회원을 가진 다음의 ‘다모’카페 게시판에는 지금도 ‘다모’의 얼개를 분석하고 명장면, 명대사를 추천하는 글들이 하루에도 몇 건씩 올라온다. ‘다모’ 홈페이지에는 지난달 27일 게시글이 200만건을 돌파했고 300만건 돌파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드라마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름 공개를 꺼린 ‘다모아클럽’의 시솝(30·여)은 “팬클럽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은근히 연예인 팬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이젠 내가 ‘다모’에 빠진 건지, 폐인에 빠진 건지 헷갈릴 지경”이라고 한다.》.

○ 드라마에도 팬덤이

‘팬덤(Fandom·팬 모임이나 의식)’도 진화한다.

특정 스타를 선호하는 팬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가수 배우 등 스타 개인을 넘어서서 TV 드라마, 정치 등 다른 분야로 확산되고, 팬들의 움직임이 직접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스타 없는 팬덤, 팬덤을 위한 팬덤도 생겨났다.

KBS의 ‘거짓말’, MBC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네 멋대로 해라’ 등 인기 드라마들에 팬클럽이 꾸려진 것이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박하사탕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 ‘번사모(‘번지점프를 하다’의 팬클럽)’ ‘파사모(‘파이란’의 팬클럽)’ 등 특정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의 모임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모임들은 참여의 정도와 열성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이 특징. 팬들이 텍스트의 고정된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수용자를 넘어서, 텍스트에서 적극적 의미를 창출해내거나 텍스트와 상호 작용하는 능동적 수용자들로 변화하고 있는 것.

얼마 전 드라마 ‘대장금’의 팬들 사이에서는 한때 ‘공식 동호회’ 논란이 벌어졌다. imbc의 커뮤니티 공간에 동호회 ‘애호 대장금’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곳에 ‘대장금 공식 카페’라는 이름의 팬클럽이 생기면서 혼선이 빚어진 것.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팬클럽을 놓고 ‘공식’ ‘비공식’ 논란이 벌어진 까닭은 팬클럽과 드라마 제작진이 이전보다 한층 더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기 때문.

‘애호 대장금’의 시솝인 김향희씨(25·여)는 “공식 동호회에는 드라마 촬영현장을 방문해 사진 촬영을 하고 연기자를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공식’ 여부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완사신문’과 얼짱 팬클럽

21일 종영한 SBS 드라마 ‘완전한 사랑’의 팬카페는 16일 200부 한정의 오프라인 신문인 ‘완사신문’을 발행했다. 팬카페 운영진은 신문 발행을 위해 몇 주 전부터 촬영장을 방문해 배우들의 사진과 사인을 모아 왔다.

팬클럽 ‘지구수호단’은 4월 흥행참패로 간판을 내린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다시 상영하게끔 이끌어내는 공을 세웠다. 재상영뿐 아니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옷을 그대로 따라 입는 코스튬 플레이 등 여러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 팬클럽 회장 이재혁씨(20)는 “영화에 대한 선호가 감독에 대한 선호로 확대되고 있다”면서 “장준환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한, 이 모임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21일 영화동호인 모임에 초청된 장준환 감독을 따라 대전에 다녀올 정도다.

현재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커뮤니케이션에 ‘팬카페’로 등록된 카페는 23만7000여개에 달한다. 대개 연예인들이 대상이지만 강금실 법무부 장관,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인터넷 소설작가, 마술사, 레이싱 걸, 드라마, 게임 캐스터 등 그 대상도 다양하다.

심지어 딸녀 팬카페나 일산아줌마 팬카페처럼 좋아하는 대상이 누군지 드러나지 않거나 극히 일부분만 알려진 일반인에 대해서도 팬클럽이 만들어진다. 네티즌이 얼짱을 직접 뽑고 다시 추종하는 방식의 ‘얼짱’ 팬클럽도 유행하는 추세.

이제 더 이상 스타가 ‘팬덤’의 유일한 진원지가 아닌 것이다.

○ 팬덤은 자기표현 수단

문화연대의 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장은 “팬덤의 형성에서 스타덤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며 “때로 팬덤은 스타덤과 독립된 독자적 문화현상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서태지 없는’ 서태지 팬클럽조직이 그 대표적인 사례.

이 소장은 “한발 더 나아가 얼짱 팬들의 경우 팬덤 자체가 놀이의 수단이 되어 팬덤을 위해 스타를 만들어내고 그 스타덤이 팬덤을 구성하는 요소가 돼버렸다”고 분석했다.

‘완전한 사랑’의 팬카페 운영자 박효심씨(20·여)는 팬덤을 “자기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이전에도 다른 드라마 팬 페이지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그는 “개인 홈페이지 같은 것으로 나를 드러내는 일에는 관심 없다. 특정 대상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애호 대장금’의 시솝 김향희씨도 3, 4년 전부터 지금까지 가수, 여러 드라마들의 팬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선호를 적극적으로 표현해왔다. ‘대장금’ 이후를 묻자 그는 “다른 드라마로 방향이 바뀌지 않을까 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특정 대상의 팬임을 표현하는 이유는 내 취향에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팬덤을 통해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리고 포토샵을 다루는 기능을 익혔고, 3, 4년간 끊임없이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왔으니, 그에게는 팬덤이 자기발전의 동력인 셈이다.

‘∼의 팬’처럼 ‘스타’의 종속변수로 존재하던 팬덤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무엇을 함께 좋아한다는 것은 모래알처럼 흩어진 현대인들을 서로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됐다.

나는 숭배한다. 고로 나 그리고 너,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팬덤이란: ‘패너틱(Fanatic·열광자)’에 세력권을 뜻하는 접미어 ‘-덤(dom)’이 붙어 형성된 조어. 특정 스타와 장르를 선호하는 팬들의 모임에서 시작해 스타나 특정한 텍스트에 대해 갖고 있는 팬 의식까지 일컫는 말이다. ‘스타덤 (Stardom)’이 스타로서의 지위와 스타의식을 통칭하는 개념이듯 팬덤도 팬 의식과 이를 둘러싼 현상들을 포괄한다. 대중문화 연구자인 존 피스크는 팬덤을 대중문화에 대한 대중의 공식적이고도 자발적인 참여방식이자 생산적 행위라고 설명했다. 국내의 본격적 팬덤은 80년대 조용필의 ‘오빠부대’에서 시작됐으며, 그 후 서태지 팬클럽, god 팬클럽 등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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