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혁명의 매혹과 환멸…카스트로 쿠바상륙

  • 입력 2003년 12월 1일 18시 45분


“미국의 언론이 그를 괴물로 만들어 놓았지만 실제 만나 본 카스트로는 아주 멋진 남자였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30시간의 마라톤 인터뷰 끝에 99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코만단테’를 만든 올리버 스톤 감독. 그는 이렇게 되묻는다. “쿠바 국민이 기아에 허덕인다고? 브라질 국민은 안 그런가?”

그러나 카스트로의 오랜 지기(知己)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그와 결별을 선언했다. 그는 쿠바가 올 4월 미국으로 망명을 기도한 쿠바인 3명을 처형한 것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그것은 나의 신뢰와 희망을 앗아갔으며, 나를 환상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장기 권력 카스트로. 서구의 지식인들은 그에게서 ‘혁명의 매혹과 환멸’을 동시에 느낀다.

그의 혁명 역정은 한마디로 불가사의다. 1956년 카스트로는 멕시코에서 만난 혁명동지 체 게바라와 함께 실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쿠바상륙작전을 감행했다. 그해 12월 2일. 때마침 불어 닥친 폭풍과 정부군의 공격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86명 중 22명. 그러나 그와 게바라는 세계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신출귀몰의 게릴라전 끝에 공산정권을 수립한다.

카스트로는 그 현란한 정치적 레터릭으로 국제적 명성을 높여 왔다.

그는 바로 미국의 턱 밑에서 “미국은 인류의 시체를 파먹고 사는 독수리”라고 비난했다. 또 세계화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자본주의는 타락을 가져온다. 쿠바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악덕(惡德)과의 접촉을 통해 더 많은 면역성을 기를 수 있다면 우리의 도덕은 그만큼 강해지는 것이다.”

카스트로는 올해 77세 생일을 맞았다. 그는 아직도 ‘사회주의가 아니면 죽음’이라고 외치지만 국제적 고립과 만성적인 경제난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AFP 통신이 적절히 표현한 것처럼 그는 지금 ‘양쪽 끝이 타들어 가는 촛불 아래’ 놓여 있는지 모른다.

쿠바의 카리브 해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햇살이 비치고 있지만 말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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