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여성예술가'…미술사 빛낸 여성 50인의 삶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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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르누아르가 그린 ‘머리를 땋고 있는 수잔 발라동의 초상화’. 발라동은 20세기 초의 프랑스 화가. 그녀는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공장의 직공, 식당 종업원, 서커스 곡예사 등을 전전하다 18세 때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이 됐다. 아들을 낳은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신선하고 독창적인 색채와 장식미로 호평을 얻었다.사진제공 해냄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그린 ‘머리를 땋고 있는 수잔 발라동의 초상화’. 발라동은 20세기 초의 프랑스 화가. 그녀는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공장의 직공, 식당 종업원, 서커스 곡예사 등을 전전하다 18세 때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이 됐다. 아들을 낳은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신선하고 독창적인 색채와 장식미로 호평을 얻었다.사진제공 해냄
◇여성예술가/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이라 디아나 마초니 지음 정미희 옮김/272쪽 1만5000원 해냄

저자에 따르면 현대 미술계에서 여성 화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남성의 5%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여성 화가의 수는 이보다 더 많았을지 모른다. 여성 화가의 작품이 폐기되거나 서명 안 된 작품들이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오인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성인 저자는 오기가 발동해 미술사를 샅샅이 뒤진 끝에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예술사 형성에 한몫을 담당한 여성 화가 조각가 사진가 50명을 찾아냈다.

18세기 후반까지는 여성 화가들의 대부분이 화가 아버지를 두었다.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허용되지 않아 부모의 가정교육이 아니고서는 재능을 발휘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태생인 라비니아 폰타나(1552∼1614)의 아버지 프로스페로 폰타나는 유명한 역사 화가였다.

무남독녀로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그녀는 아버지의 화실에서 개인지도를 받았고 ‘남성 화가들과 작품 주문을 경쟁했던 최초의 여성 화가’로 기록됐다. 그녀는 ‘옷을 입은 미네르바’ 등 100여점의 작품을 그렸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의 여성 화가로는 드물게 방대한 양이다.

여성 화가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동료 화가를 남편으로 맞는 경우가 많았고, 결혼은 화가로서의 경력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리안 폰 베레프킨(1860∼1938)은 시대를 앞선 화풍과 과감한 색채, 적절한 빛 조절로 고향에서는 ‘러시아의 렘브란트’로 인정받았다. 그녀는 화가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와 결혼했는데 야블렌스키는 나이도 네 살 어리고 그림 솜씨도 아내보다 처졌다. 하지만 결혼 후 그녀는 10년간 붓을 놓고 남편의 후원자 역할에만 전념했다.

“모든 작품 활동에서 나는 결국 여자일 뿐이다. 나에게는 나의 이상을 표현할 힘이 결여돼 있다.”

연하의 남편은 하녀와 눈이 맞아 떠나고 베레프킨은 출중한 재능을 펼쳐 보이지 못한 채 잊혀져 갔다.

우크라이나의 화가 소냐 들로네(1885∼1979)는 동갑내기 프랑스의 화가 로베르 들로네와 결혼한 후 수공예와 디자인으로 활동분야를 바꿨다. 남편과의 경쟁에서 오는 중압감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 남편의 작품 활동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녀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1975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남편도 아내의 내조 덕분에 화가로 대성했다.

극단적 체험은 예술가의 작품세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는 바로크시대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의 유명한 그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가 걸려 있다. 여자가 대검으로 남자의 목을 베는 장면이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작가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미술 교사였던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유혈이 낭자한 모티프를 채택해 복수하는 여성에게 비중을 두었다’.

작가마다 주요 작품 목록과 특징, 생애, 작가와 관련된 국내 출간 도서,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 등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하지만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눈에 거슬린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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