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9년 그레이스 켈리 출생

  • 입력 2003년 11월 11일 18시 41분


할리우드에서 홀연히 ‘모나코 왕국의 백조(白鳥)로 날아간’ 그레이스 켈리. 그리고 재클린 케네디, 아니 재클린 오나시스.

두 사람은 같은 해인 1929년 출생했다.

이들은 20세기의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였다. 그러나 이들이 들려주는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의 ‘그 뒤’는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 이들은 말년의 공허와 상실감을 어쩌지 못했다.

재클린의 인생을 바꿔놓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 그는 켈리의 삶에도 개입했다.

모나코의 레니에 3세와 켈리는 칸 영화제에서 우연히 만난 게 아니었다. 당시 모나코 왕실을 쥐락펴락했던 오나시스. 그는 모나코 경제의 젖줄이나 다름없었던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해 레니에와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할리우드 스타와의 결혼을 제의한다.

두 사람의 결합은 오나시스에겐 사업이었고 레니에에겐 정치였다.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처럼 차갑고 이지적인 분위기의 켈리. 금발의 굵은 웨이브와 깊은 눈은 고전적인 미와 정숙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면에 뜨거움을 간직한 여자였다.

평생 그녀를 흠모했던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그녀를 ‘눈 덮인 화산(火山)’에 비유했다. 그는 지독한 여성혐오증 환자였으나 켈리에게 매혹됐다. 사디스트다운 그의 설명. “성적 매력에는 서스펜스가 있어야지요. 메릴린 먼로의 ‘섹스 어필’에는 긴장이 없어요. 내가 왜 켈리를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거실의 숙녀처럼 보이지만 침실에서는 요부가 되는 반전(反轉)의 전율 같은 거지요.”

그런 그녀에게 궁중 생활은 숨이 막혔다. 그녀는 차츰 말을 잃어갔다. 그녀는 할리우드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히치콕이 제안한 ‘마니’의 여주인공역은 성사단계에서 레니에의 반대에 부닥친다. 이때부터 그녀가 알코올에 의존해 살아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녀가 애송했다는 칼릴 지브란의 시(詩)는 그녀의 숙명이었을까. ‘사랑이 너를 부를 때, 그를 따라가거라/ 비록 그의 목소리가 네 꿈을 흩어버릴지라도….’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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