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11월 9일 19시 3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얼마 전 고건 총리가 청사 후문으로 걸어 나가는데 총리를 보고도 목례조차 않고 지나가는 젊은 공무원들이 있더군요. 옛날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자유도 좋고 개성도 좋지만 공무원사회가 갈수록 ‘예(禮)와 정(情)’을 상실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그는 추억 속의 총리나 장관들을 떠올리며 “그래도 그때는…”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구 중앙청사와 정부청사 방호원, 청소부까지 모두 집으로 초대해 냉면과 빈대떡을 대접해준 김옥길 전 문교부 장관, 방호실까지 내려와 직접 격려금을 건넸던 강영훈 전 총리, “방호원이 청사에서 제일 고생하는 사람들”이라며 수시로 회식비를 보내준 김동영 전 정무장관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겨울에 방호원들의 옷을 직접 만져보고는 즉석에서 ‘좋은 방한복과 방한화를 만들어주라’고 지시했을 만큼 잔정이 많았습니다. 80년대 초 김용휴 전 총무처 장관은 겨울바람 때문에 빨개진 제 얼굴을 직접 손으로 어루만지시더니 ‘너무 춥지. 고생이 많네’라며 격려를 해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는 윗사람에 대한 깊은 존경과 끈끈한 인간적 유대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다시 현실 얘기로 돌아가자 그는 “방호업무는 외부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정부청사를 보호하는 일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방호원을 단순한 경비쯤으로 취급하는 사람을 대할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애환을 털어놓았다.
“국정감사 때는 외부인들의 차가 많아 청사의 하위직공무원들에게 자가용 이용을 하루 이틀만 자제해달라고 하곤 하는데 그럴 때 ‘하위직인 것도 서러운데 차 갖고 다니는 것까지 차별하느냐’며 거칠게 항의하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난처합니다. 어떤 직원은 ‘평생 수위나 하라’며 폭언을 하기도 하죠.”
정년퇴임까지 남은 기간은 3년1개월. “제 일에 대해 한순간도 긍지와 보람을 잊어본 적이 없어요. 돌이켜보니 30년 동안 매일 오전 4시20분에 아침식사를 차리면서도 한번도 군말하지 않은 아내가 가장 고맙더군요.”
퇴임 후엔 고교 때 전공을 살려 채소농사를 짓고 싶다는 게 그의 작은 희망이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