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 나의 인생]<5>젊은 미혼 여성의 재테크

  • 입력 2003년 10월 15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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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옷 잘 입는다”는 소리를 듣는 이모씨(28·여)는 씀씀이가 크다.

이씨는 올 7월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해외 브랜드의 패션 용품 구입 등에 매달 100만원가량을 쓰는 ‘명품족’이었다. 외식비 등까지 합치면 월급보다 카드 사용 대금이 더 많은 달도 꽤 됐다.

그는 최근 후회막심이다. 내년 5월로 결혼 날짜를 잡고 보니 결혼자금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 꼬박 3년6개월 동안 회사생활을 했지만 통장에 남은 돈은 1500만원이 전부였다. 이씨는 부모님에 손을 벌리는 과정에서 한동안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영화 ‘싱글즈’의 한장면. 동아일보 자료사진

재무 컨설팅회사인 ‘엉클조 아카데미’의 조경만 사장은 최근 결혼을 앞둔 29세 여성 2명을 상담하고 “너무 차이가 난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 여성은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재테크를 소홀히 하다 5000만원의 빚을 졌다. 반면 고졸 학력의 다른 여성은 취직 이후 저축, 펀드 및 공모주 투자 등을 통해 꾸준히 돈을 불렸다는 것. 이 돈을 모아 아파트를 산 뒤 집값이 오르면서 결혼자금도 충분히 마련했다.

20대를 슬기롭게 보냈는지 여부에 따라 결혼생활의 출발점이 달라진 사례다.

▽20대 미혼 여성이 결정해야 할 것들=여성이 20대에 결정해야 할 일들은 많다. 직업과 배우자 선택 등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결정이 줄줄이 놓여 있다. 좋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자기 계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몸값’을 불려 수입 규모를 늘리는 것은 중요한 재테크 기반이기도 하다.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면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혼수를 장만할 정도의 돈을 모으는 일도 중요하다. 혼수와 주택 마련 등을 합친 결혼비용이 평균 9000만원대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재무설계 전문가들은 젊었을 때 무작정 재산을 모으기보다는 능력 계발에 아낌없이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유학 등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빚을 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이들은 은퇴와 노후 대비 등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인생 설계를 짜야 하는 것도 이 시기라고 강조했다. 젊어서부터 금융 관련 정보를 꾸준히 접하고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훈련을 하면 30, 40대 때의 본격적인 투자에도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선진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평생 재무 설계의 중요성과 방법을 배운다”며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빨리 시작할수록 경제력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인생 계획을 짤 수 있다”고 말했다.

▽빨리 시작해서 오래 굴려라=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수입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만큼 이른 재테크 계획의 필요성은 오히려 더 높은 편이다.

한국여성개발원에 따르면 여성들이 받는 월 평균 임금 수준(2001년 기준)은 130만원 이상이 전체의 26.6%로 남성(48.2%)에 비해 크게 낮았다. 여성들의 정규직 취업 비율도 1990년 30% 수준에서 2001년 16%로 하락했다. 근속연수도 남성에 비해 적다.

젊은 여성들이 같은 또래의 남성보다 돈을 더 많이 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모 카드회사의 성별 이용금액을 보면 매달 50만∼100만원을 쓰는 여성이 전체의 12.6%로 남성(15.1%)보다 적었다. 100만원 이상 사용자도 여성이 0.9%, 남성이 1.3%로 차이가 났다.

문제는 돈을 무작정 아끼면서도 효율적인 재테크를 하지 않는 경우. 금융계에서 일하는 김모씨(32·여)는 바쁘다는 이유로 월급을 어머니에게 고스란히 맡겼다. 양씨의 어머니는 이 돈을 적금과 일반 예금 통장에 넣어뒀지만 금리가 떨어지면서 별다른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투자 ‘종자돈’을 만들기 위한 저축의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 적립식 투자를 먼저 시작해 오래 굴리는 사람은 똑같은 금융상품에 10년 뒤늦게 투자했을 때보다 수억원을 더 탈 수도 있다. 단 금리 하락으로 저축의 기대수익률이 낮아지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저금리를 감안해 주식형 적립식 펀드 등 위험은 있지만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상품에도 관심을 기울이라고 권했다. 금융 환경이나 정책의 변화, 새로운 투자 상품 등도 꾸준히 공부해 활용해야 한다.

한미은행 이건홍 재무설계사는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하기 때문에 재테크에 유리한 점도 많다”며 “투자 기간이 긴 것을 감안해 ‘3년 안에 4000만원 모으기’ 식으로 단계별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 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20~30대 관심끌만한 투자 상품
상품주요 특징
장기주택
마련저축
-노후를 위한 목돈 마련에 적합
-만기 7년 이상 50년까지 가능, 비과세
-분기별 300만원 내에서 불입
연금
저축
-10년 이상 적립
-노후에 연금식 수령 가능
-적립기간 중에는 비과세, 연간 불입금액에서 최고 240만원까지
소득공제혜택
적립식
펀드
-저금리시대에 주가상승에 따른 높은 수익률 기대할 수 있음
청약
부금
-목돈이 없는 경우 활용.
2년 지난 뒤 1순위가 되었을 때 청약에 적극 활용.
상호부금-단기간에 목돈을 마련하고자 할 경우
-만기를 본인의 원하는 날짜로 지정 가능
자료:하나은행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주택-혼수 등 효율적 예산분배▼

상당수 여성들이 행복해야 할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혼수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예비신랑측과 얼굴을 붉힌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여성의 입장에서는 양가 어른들이 관여하는 혼사를 치르면서 무조건 싸게만 혼수를 준비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 전문가들은 혼수를 준비하는 여성들에게 “양가 부담 항목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혼수품 공동구매 등을 통해 비용을 절약하라”고 충고한다.

지난달 한국소비자보호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신혼부부 한 쌍의 혼수비용은 평균 1819만원. 전체 결혼준비 비용의 20%에 이른다. 보통 여성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혼수비용에는 가전, 가구, 주방, 침구, 예단, 예물 등이 포함된다. 최근 웨딩전문잡지 마이웨딩 조사에 따르면 58.4%의 여성이 부모에게 혼수비용을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수비용 중에서 예산 세우기가 가장 힘든 부분은 예단과 예물.

웨딩컨설팅업계에 따르면 혼수비용 2000만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예단에 평균 300만∼500만원, 예물에 200만∼350만원 정도가 들어가지만 가풍이나 경제형편에 따라 실로 천양지차다.

전문가들은 예단 예물에 많은 혼수비용이 들어가고, 양가 갈등의 소지가 큰 만큼 대화와 조율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신랑측에 예단 예물 비용에 대해 직접 말하기 힘들다면 ‘중간자’ 역할을 하는 웨딩플래너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전, 가구, 침구, 주방 등 ‘살림살이’용 혼수는 신세대 예비신부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 혼수비용 2000만원 기준일 때 살림살이 마련에는 평균 600만∼800만원이 들어간다.

혼수품을 마련할 때 신혼부부의 생활패턴을 충분히 고려해야만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침구에 집중 투자하는 반면 거실 가구와 영상·음향기기는 실속형을 고르는 것이 좋다. 전업 주부인 경우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주방 가전을 꼼꼼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혼수예산을 세울 때 ‘구입할 것’과 ‘선물 받을 것’을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족, 친인척, 친구들에게 선물 받고 싶은 것을 미리 얘기하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좋은 일이다.

혼수품 공동구매도 비용 절감의 한 방법. 웨딩컨설팅업체와 여성관련 인터넷 사이트들이 운영하는 공동구매 코너를 통하면 시중 가격보다 20∼40% 싼 가격에 혼수품을 마련할 수 있다.

한국웨딩플래너센터 박미애 본부장은 “요즘 미혼 여성들은 예비신랑측과 상의해 ‘공동부담’ 방식을 선택하는 추세”라며 “1억원 정도의 공동 자금을 통장에 넣어두고 혼수, 주택, 신혼여행 등에 예산을 배분하면 효율적으로 결혼비용 관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독신으로 계속 살 경우▼

영화 ‘싱글즈’에 나오는 독신 여성들의 이야기는 이제 주변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삶의 형태가 됐다.

독신 여성들은 부양할 가족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적다. 또 대부분 30, 40대 초반으로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어 크게 돈 걱정을 하지 않는다. 다만 독신생활은 말년에 자신을 챙겨 줄 가족이 없다는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고정적인 수입원이 있는 경우에도 노후 대비는 필수다.

독신 여성중에는 혼기를 놓치거나 맘에 드는 배우자를 찾지 못해 원치 않는 ‘홀로 서기’를 하게 된 경우도 있다. 결혼을 ‘재테크 출발점’으로 계획하고 마냥 미루던 여성들은 제때 돈 관리를 시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 십상이다.

경영학 박사인 양모씨(37·여)는 요즘 문득 노후가 불안하다는 생각에 자주 우울해진다. 양씨는 박사 과정 연구에 매달리다 혼기를 놓쳤고 재테크에도 신경을 쓰지 못했다. 강사 신분으로 봉급도 넉넉지 않은 편. 장기간 학비를 대고 나니 남은 돈도 별로 없다.

양씨는 “노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작년부터 보험과 개인연금, 암보험 등에 들고 있다. 무엇보다 집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이지만 현재 부동산 가격으로는 꿈같은 이야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금융 전문가들은 독신의 경우 재테크 방식도 일반 가정과는 다르게 선택해야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예를 들면 보험을 들 때 상속을 염두에 둔 생명보험보다는 의료, 상해보장 중심으로 가입하는 식이다. 사망 후 다른 사람이 받을 몫을 최소화하고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보험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은행 김성엽 백궁지점장은 “집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크므로 우선적으로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살 집을 늦기 전에 마련해 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만기 7년 이상의 장기주택마련 저축이나 펀드를 집 장만을 위한 목돈 마련에 사용하라고 권했다.

갑자기 사용할 돈이 필요해지는 경우를 대비해서는 MMDA나 MMF 등 요구불성 예금을 확보해 두는 것이 좋다.

가족부양의 부담이 없으면 과소비를 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스스로 소비생활 계획을 짜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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