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7년 마타하리 처형

  • 입력 2003년 10월 14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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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파탈(Femme Fatale·치명적인 여인).’

1917년 10월 15일. 마타하리가 스파이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고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처형됐다. 그의 나이 41세. 시신은 해부용으로 보내졌다.

네덜란드 출신인 마타하리의 본명은 M G 젤러. 파리의 사교계로 진출하면서 마타하리로 개명했다. 마타하리는 인도네시아어로 ‘새벽의 눈동자’, 태양을 뜻한다.

1905년 파리 몽마르트르에 개장한 물랭루주에 나타난 마타하리는 스트립쇼나 진배없는 현란한 발리춤으로 클럽의 명물로 떠오른다. 올리브빛 피부, 커다란 갈색 눈, 검은 머리카락…. 자바인을 자처한 그의 이국적인 외모는 뭇 남성들을 달아오르게 했다. 프로이센의 황태자, 네덜란드 총리, 프랑스 귀족, 영국의 백작이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데, 그는 스파이였는가. 재판관의 말대로 그가 빼낸 군사기밀은 연합군 병사 5만명을 죽일 수 있는 가치가 있었는가.

프랑스 정보부는 그가 독일 스파이인 ‘H21’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99년 비밀 해제된 영국 정보부의 제2차대전 문서는 “마타하리가 그 어떤 군사정보도 독일에 넘긴 증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유일한 혐의는 독일이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할 당시 우연히 베를린에 있었다는 것뿐이다.

마타하리는 스파이로서 쓸모가 없어지자 독일이 버렸으며, 프랑스가 대독일 선전전에 이용하기 위해 그를 처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프랑스는 세계대전으로 정치와 군부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이 극도에 달했으며 전쟁의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이 필요했다는 것.

심지어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크리스토퍼 앤드루 박사는 “마타하리는 스파이가 된다는 데 낭만적인 환상을 품은 몽상가”라고 말했다.

매혹적인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로 깊이 각인된 마타하리. 그가 스파이가 아니라면, 단지 시대의 속죄양일 뿐이라면 역사는 그를 희롱한 것인가. 아니면 스파이를 자처한 ‘다국적 콜걸’이 역사를 희롱한 것인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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