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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15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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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러나 많은 서양 사람들처럼 내게 있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홀로 또는 가장 친한 가족과 함께 부르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밥 머레이 노래를 부르거나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서 타일 벽에 울리는 목소리로 리키 마틴을 읊조리는 식이다. 공공의 장소에서 노래를 하다니! 그것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자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국친구들이 저녁 회식을 끝내고 노래방으로 2차를 가자고 할 때마다 항상 거절했다. 그들은 악착같이 끌고 가려고 했고 나는 끝까지 저항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그들의 끈덕짐은 더해갔고 나는 노래방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명거리를 만들어냈다.
“아차, 벌써 10시30분이잖아. 미안해, 난 가야 해. 내일 수업시간에 쓸 11시 AFKN 프로그램을 녹음해야 해.” “아뿔싸, 깜박했네. 우리 어머니가 10시에 전화하기로 했는데 집에 빨리 가봐야 돼….”
그러나 이런 필사적인 거절에도 불구하고, 노래방에 대한 호기심은 어쩔 수 없었다. 무엇이 노래방을 그토록 유행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고 가라오케 장비를 통해 들리는 나의 목소리는 어떨지 궁금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게 밥 머레이와 리키 마틴보다 더 뛰어난 노래재능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도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가장 친한 한국친구들과 모였을 때 나는 마침내 노래방에 가기로 했다. 그들을 실망시키는데 나부터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변명을 하는 데도 지쳤고, 나의 재능을 궁금해 하는 데도 지쳐 있었다.
내가 첫 번째로 노래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숫기가 없었다. 그러나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샤워하며 종종 혼자 부르던 로맨틱한 발라드를 불렀다. 가라오케 장비는 나의 목소리를 허스키한 바리톤으로 바꿔놓았고, 스피커를 통해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친구들은 감동했고, 나 또한 완전히 도취됐다. 심지어 수백만의 여자 관중이 환호하는 것으로 착각까지 했다. 난 다른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마지막 두 곡을 부를 때는 일어서서 눈을 감았으며 상투적인 화려한 제스처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눈을 감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화려한 제스처로 마무리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슬프게도 그 자리에 있던 한국친구들은 그 뒤로 나를 피해 다니는 기색이기 때문이다. 내 ‘과잉 행동’이 초래한 ‘부작용’이리라.
나는 그 뒤 노래방에 가지 않는 것은 물론 학생들이 가는 것도 말리고 있다.
▼약력 ▼
캐나다인으로 1991년 한국에 와 외국어학원 강사를 하다가 한국인 제자와 결혼해 5세 된 아들을 두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 영어전문교사 양성(TESOL) 프로그램 교수로 일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 35개국을 여행했으며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다.
테리 넬슨 성균관대 TESOL 프로그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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