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생활체험]수도자도 일할땐 쾌활

  • 입력 2003년 8월 15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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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생활 체험학교 참가자 중 한 명이 입회식에서 무릎을 꿇은 채 신부에게 수도자의 생활을 충실히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왜관=서정보기자
수도생활 체험학교 참가자 중 한 명이 입회식에서 무릎을 꿇은 채 신부에게 수도자의 생활을 충실히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왜관=서정보기자
“주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받으소서. 그러면 나는 살겠나이다. 주는 나의 희망을 어긋나게 하지 마소서.”

14일 오후 3시반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의 성당에는 수도자의 길을 가겠다는 서원(誓願)이 담긴 ‘수시뻬’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수도회와 포교 성베네딕도 대구 수녀회가 14∼17일 3박4일 일정으로 연 ‘수도생활 체험학교’가 막 시작된 것. 여기에 참가한 80여명의 10, 20대 남녀 젊은이들은 나흘간 수도자들과 똑같은 하루 일과를 보내게 된다. 기자도 1박2일 동안 이 프로그램에 동참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수도회 생활을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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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회식(14일 오후3시반): 행사를 주관한 박 안셀모 신부는 인사말에서 “수도자는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다”며 “다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참사랑과 행복을 찾기 위해 부족한 자신을 봉헌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도와 노동(Ora et Labora)’이라는 성베네딕도회의 표어처럼 수도자의 생활은 하루 5번의 기도와 오전 오후 노동, 독서, 묵상 등으로 단순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참가자들은 수도자들이 서원할 때와 똑같은 의식을 치렀다. 짧은 기간이지만 진정한 수도 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을 한 것.

:식사(오후 6시40분): 저녁 기도 직후 가진 저녁 식사는 침묵 속에서 이뤄졌다. 참가자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어른 손바닥만 한 햄버거스테이크 외에 밥 어묵국 김치 나물 무절임 등이 전부. 간소한 식사 역시 수도자의 미덕인 것.

:끝기도(오후8시): 수도자들이 줄지어 성당에 들어왔다. 수도원에선 아침, 묵주, 낮, 저녁, 끝기도 등 5번의 기도시간을 갖는다. 먼저 “내 탓이오”라고 참회하는 고백의 기도가 이어진 뒤 시편과 찬미가를 번갈아 독송한다. 아빠스(성베네딕도 수도회의 최고 신부)가 강복(降福)하고 나면 성당의 모든 불이 꺼진다. 마무리 기도를 마친 수사들이 하나둘씩 성당 문을 나섰지만 노(老)수사 2명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일어설 줄 모른다. 잘못한 게 많은 것일까. 그들이 용서를 비는 잘못은 아마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더 많이 나눠주지 못했다는 것이었으리라. 끝기도 이후 취침 전까지 대(大)침묵에 들어간다. 사람과 말하지 않고 하느님과 단둘이 대화를 나눈다.

:서원식과 은경축(15일 오전 7시): 오전 5시에 일어난 이들은 수녀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날은 수녀 3명의 첫 서원과 수도서원 25년을 맞는 수녀들을 위한 은경축(銀慶祝) 미사가 열렸다. 첫 서원을 하는 이들은 순명(順命·자신의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 정주(定住·수도원에 속해 항상 그리스도 안에 머물겠다), 수도승답게 살 것(날마다 새롭게 자신의 삶을 개선한다) 등 세 가지를 약속했다. 이들은 주님의 멍에를 의미하는 성의(聖衣)와 사랑의 봉헌을 의미하는 수건을 받으며 비로소 정식 수녀가 됐다. 이어 수도서원 25년을 맞은 5명의 노수녀들은 앞으로도 수도생활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모든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노동(오후 1시반): 참가자들이 향한 곳은 수녀원이 운영하는 주방, 재봉실, 농장, 병원 등. 미숙련공에게 주어진 일은 단순 작업이었다. 항아리와 대형 냉장고 닦기, 논에서 피 뽑기 등. 더운 날씨에도 참가자들은 군소리 없이 땀을 흘리며 수도자로서의 노동을 맛봤다. 김상윤씨(영남대 3년)는 “수도자들을 규율만 따르는 엄숙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항상 웃고 쾌활한 것을 보고 놀랐다”며 “믿음의 배터리가 충전이 안 돼 한동안 성당에 나가지 못했는데 수도자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왜관=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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