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요리]스파게티店 ‘토마토 이야기’ 장순규-이필호

  • 입력 2003년 7월 6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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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부터 서울 동작구 사당동 남성시장 앞에는 ‘토마토 이야기’라는 작은 스파게티집이 생겼다. 10평 규모 매장에 4인용 테이블 3개, 2인용 테이블 3개가 전부지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메뉴로 젊은 애기엄마들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들 손님 대부분은 이곳 남자 주방장 2명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사장인 장순규(張淳奎·34)씨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의 연구원이었고, 주방장 이필호(李必鎬·28)씨는 삼성그룹계열사인 세콤에서 VIP 경호를 맡았던 보디가드 출신이다.

장씨는 연세대 공대 석사과정을 마치고 94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지난해 초까지 8년간 반도체 개발에 주력해왔다. 256메가D램과 1기가D램의 개발 및 양산화 작업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에 밤잠도 자지 않고 연구에만 매달렸다. 그러다 고혈압과 지방간 등으로 건강에 이상이 찾아왔고 6개월간 휴직을 하면서 미래를 생각해봤다.

각기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연구원과 VIP 경호원으로 있다가 자신들의 꿈을 찾아 이탈리아 음식점 운영에 나선 장순규씨(아래)와 이필호씨.-박주일기자

“제가 너무 평균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대학까지 마치고, 회사 들어가서도 시키는 대로 연구만 하고. 삼성전자에서 그런 평균적 인생의 미래는 결국 45∼50세경 퇴직하는 겁니다. 그럴 바에야 젊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결심했죠.”

그렇게 지난해 3월 회사를 나온 그는 중소기업창업지원센터에서 음식창업스쿨을 다니는 한편 요리학원을 다니며 두달 만에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왜 벤처기업이 아닌 음식점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음식점도 벤처예요. 창업성공률이 10%에 불과합니다.”

그는 국내 스파게티 시장이 4000원대와 8000원대로 양분된 것에 주목했다. 4000원대는 삶아진 면에 준비된 소스를 얹는 인스턴트 제품이고 8000원대는 면과 소스를 직접 뽑는다. 그는 면과 소스를 직접 만들되 가격을 내린 6000원대 시장을 노리기로 했다. 최근 완공된 지하철 7호선 역세권을 돌며 매장을 물색하다 지금 자리를 골랐다.

“1주일간 가게 맞은편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의 숫자와 성, 연령 등의 통계를 뽑았어요. 30대 아줌마 층이 가장 많았죠.”

이필호씨가 합류한 것은 올해 초. 이씨는 태권도 4단, 검도 4단, 특공무술 2단 도합 10단의 유단자로 2000년 세콤에 입사해 1년은 반도체 경비, 2년은 VIP경호를 맡았었다.

“저 역시 주어진 트랙 위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무술유단자가 도장을 차리지 않으면 경호업무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군에서 취사병을 하면서 오히려 요리가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씨는 삼성전자 연구원이던 매형의 소개로 장씨를 알게 되면서 지난해 말 사표를 내고 그의 수제자가 됐다. 무술로 단련된 그의 손은 지금 하루 수십그릇의 스파게티 면을 뽑고 있다.

“경호업무는 휴일도 없고 매일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도 힘들어요. 한 1년간 여기서 배우고 수원 집 근처에 체인점을 낼 계획입니다.”

장씨의 꿈은 ‘토마토 이야기’를 전국적 체인으로 키우는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자신들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게 새 삶을 열 수 있는 노하우를 전달하는 기쁨 때문이라고 한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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