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개량 가야금 열손가락 연주' 代물린 천새빛군

입력 2003-06-08 18:10수정 2009-09-29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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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과 6월 1일 이틀간 국립국악원에서 펼쳐진 제1회 서울 가야금 경연대회에서 신설된 ‘창작’ 분야 중등부 대상은 천새빛군(15·경기 부천시 덕산중 3년)에게 돌아갔다.

천군은 지난해부터 전국 가야금 경연대회에 출전하며 국악계에 작은 파문을 낳았다. 권투에 비유하자면 그는 일종의 변칙복서기 때문이다. 연주하는 가야금부터 다르다. 그의 가야금은 전통 가야금(12현)보다 현이 2배나 많은 23현 가야금이다. 연주방법도 다르다. 전통적 가야금 연주에서는 왼손은 현을 누르는 농현(弄絃)에만 쓰고 현을 튕기는 것은 오른손 엄지, 검지, 중지 3개를 사용한다. 천군은 열 손가락을 모두 사용해 현을 튕긴다.

전통 가야금은 음역이 좁다. 12줄이 각각 한 개의 온음을 내므로 가까스로 1옥타브(7음)를 넘길 뿐이다. 하지만 23현 가야금은 3옥타브 이상을 낼 수가 있다. 따라서 단순 선율만 내는 것이 아니라 화음 연주가 가능해진다. 천군은 두 손을 이용해 선율과 화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독창적 연주법을 펼친다.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제1회 서울 가야금 경연대회 중등부 창작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한 천새빛군이 아버지가 직접 개조한 23현 가야금을 들고 환히 웃고 있다.-부천=강병기기자

이런 천군이 경연대회에 등장할 때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천군의 연주를 전통적 연주와 어떻게 비교한단 말인가. 결국 그에게 상을 주되 ‘개량가야금 연주’라는 꼬리표를 달아줬다. 그러다 서울 가야금 경연대회에서 산조와 병창 외에 ‘창작’ 분야가 처음으로 개설됐고 천군은 국립국악원 무대에서 당당히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를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아버지 천익창(千益昌·52)씨였다. 천씨는 한때 미8군 밴드에서 활약하던 유명 건반연주자였다. 그러다 국악기의 소리에 홀려 가야금을 배웠다. 그리고 국악기의 매혹적 선율에 서양 음악의 풍부한 표현력을 담아내는 데 반평생을 바쳤다.

저음과 중음, 고음을 내는 세 대의 가야금을 나란히 놓고 열 손가락 연주법을 개발했다. 23현 가야금은 이를 발전시키고 북한의 21현 가야금을 변용해 개발한 것이다. 또 2줄은 아쟁처럼 활로 연주하고 나머지 10줄은 전통 가야금처럼 연주하는 전자가야금도 개발했다. 이론 작업도 병행해 서양 7음계 악보와 전통적 5음보를 통합한 ‘3선보’라는 악보도 개발했다.

지금은 ‘퓨전’이란 말로 일반화된 이런 시도는 국악계에서 ‘족보 없는 음악’으로 따돌림 받았다. 그에게서 새로운 연주법을 배운 제자가 있다한들 받아줄 학교도 없었다.

결국 외아들 새빛이 유일한 전수자가 됐다. 일곱 살부터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한 천군은 학교 수업만 끝나면 가야금과 씨름하며 아버지의 분신으로 성장했다.

“남들은 가야금을 골동품처럼 다루지만 제게는 신나는 장난감이에요. 아버지의 가야금을 통해 국악이건 요즘 음악이건 모두 새롭게 태어나니까요.”

6일 부천시의 15평 아파트에서 만난 천군은 전문 연주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천씨는 요즘 그런 아들의 고교 진학을 앞두고 고민 중이다.

“아들의 연주기법을 그대로 존중해주는 국악고가 있다면 몰라도 전통 연주법에만 묶여야 한다면 일반 고교로 진학시키려 합니다. 음악이란 게 연주자가 악기를 갖고 놀아야지 악기에 연주자가 눌려서야 쓰겠습니까.”

부천=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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