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공화국]이라크戰 방아쇠 책이 당겼다

  • 입력 2003년 4월 17일 17시 16분


부시 미 대통령. 체니 미 부통령.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
부시 미 대통령. 체니 미 부통령.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마이클 해링턴의 저서 ‘또다른 미국(The Other America)’을 읽고 ‘위대한 사회’ 계획을 주창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에 영향을 준 책은 조지 길더의 ‘부와 가난(Wealth and Poverty)’이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로버트 카플란의 저서 ‘발칸의 망령들’(Balkan Ghosts) 때문에 1999년 발칸전쟁 초기에 미온적 대응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라크전쟁을 강행한 워싱턴의 수뇌부는 어떤 책을 읽었을까.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준 책들’이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조지 W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이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 정책을 수행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책들을 소개했다.

부시 대통령은 한번도 책벌레로 소개된 적이 없다. 집에 있는 책들은 대개 도서관 사서 출신인 로라 부시 여사가 보는 것이다. 한때 그의 연설문 원고를 썼던 데이비드 프럼의 말을 빌리자면 부시 대통령은 ‘호기심이 없어 제대로 된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여름 열독한 것으로 알려진 책이 엘리엇 코언의 ‘최고 사령부(Supreme Command)’다. 코언은 미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이자 존스 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

저자는 이 책에서 “전쟁은 장성들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전략이 군사적 전략에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례로 부시 전 대통령이 걸프전 당시 군부의 말만 믿고 전쟁을 일찍 끝낸 탓에 후세인의 정치적 생명을 끊어놓는 데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신보수주의의 방향타 격인 잡지 ‘주간 스탠더드(The Weekly Standard)’의 윌리엄 크리스톨 편집장은 이 책을 ‘부시 대통령이 반드시 읽어야 할 단 한권의 책’이라고 극찬했다. 실제로 미 국방부와 국무부에서는 필독서였다고 한다.

체니 부통령은 지난해 가을 전사(戰史) 연구가인 빅터 데이비스 핸슨의 ‘전쟁의 가을(An Autumn of War)’을 읽고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핸슨은 저서에서 고대 그리스인의 전쟁관을 소개했다. “전쟁은 끔찍하지만 문명세계 건설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악을 물리치고 선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부당하거나 비도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의 학정에 대항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죄의식 없이, 전쟁을 오래 중단없이 수행하여 적들을 남김없이 소탕해야 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체니 부통령은 그의 보좌관에게 “핸슨의 책이 나의 철학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 후 체니 부통령은 은밀한 장소에서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책을 탐독하고 중동 전문가들에게 자주 자문했다. 이들 학자 가운데 버나드 르위스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랍 세계는 유약함을 무시하고 실력 행사를 경외한다.”

럼즈펠드 장관이 필독서로 꼽은 책은 윌리엄 맨체스터가 쓴 윈스턴 처칠의 전기 ‘마지막 사자(The Last Lion)’와 진주만 공격 과정에서 정보전의 실패를 분석한 로버타 홀스테타의 ‘진주만-경고와 결정(Pearl Harbor-Warning and Decision)’.

처칠은 “철저한 조사(probing)는 언제나 옳으며 정가의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다”고 말했고 럼즈펠드는 신보수주의 논객들로부터 “럼즈펠드는 일류이며 그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회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시 대통령, 체니 부통령, 럼즈펠드 장관이 탐독한 책들의 공통점은 미국의 일방적인 외교정책을 옹호하는 신보수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점이다. 신보수주의의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조직이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다. 이 조직은 미국이 국익에 적대적인 정권에는 군사력으로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동조하는 인물로는 체니 부통령, 럼즈펠드 장관, ‘역사의 종말’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 그리고 카네기 재단의 로버트 케이건 수석연구원이 있다.

케이건이 올해 초 출간한 ‘미국 vs 유럽-갈등에 관한 보고서(Of Paradise and Power)’는 언론으로부터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에 필적하는 필독서”라는 평을 받았다.

케이건은 이 책에서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카우보이’와 ‘술집 주인’으로 비유해 설명했다. 술집에 들어선 무법자는 술집 주인은 공격하지 않는다. 그래서 술집 주인보다는 무법자에게 총을 겨누는 카우보이가 더 큰 위협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의 입장은 전형적인 술집주인식 태도이고 미국은 카우보이다. 책의 제목대로 미국의 ‘파워’는 국가간 협상과 평화 등 유럽이 추구하는 ‘파라다이스’의 필요조건이라는 주장이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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