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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15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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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52) 스님과 문규현(57) 신부가 지난달 28일 전북 부안군 해창갯벌에서 '새만금 갯펄과 온세상의 생명 평화를 염원하는 3보 1배'를 시작한지 18일째인 14일 오후 3시반. 두 사람은 그동안 부안 김제 서천을 거쳐 보령시 웅천읍으로 가는 21번 국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3보 1배.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절을 하는 고행(苦行). 오전 8시부터 점심시간(1시간반)과 중간중간 휴식시간만 빼고 5시간 가까이 이동했지만 고작 5km를 지나왔을 뿐이다. 이 속도로 지금까지 80km를 왔고 최종목적지인 서울 광화문까지는 220여km가 남았다.
시작 3일째부터 오른쪽 무릎에 물이 찬 수경 스님은 절할 때 먼저 왼무릎부터 땅을 짚는다. 사흘전에는 무릎에서 두루마리 휴지 반을 흠뻑 적실 정도로 피를 빼냈다. 13일 저녁 기자가 이들이 야영하고 있던 보령시 주산면 야룡리 빈터를 찾았을 때 그는 청년한의사회에서 봉사나온 한의사로부터 침과 뜸을 맞고 있었다.
"처음엔 근육이 아프더라구. 일주일 지나니까 근육은 좀 적응됐는데 이젠 관절이 안좋아. 하지만 서울까지 가는데는 아무 문제없어."
땅이나 마루에서 절을 하는 것과는 달리 아스팔트는 절할 때의 충격을 조금도 흡수하지 않는다. 당연히 뼈마디에 가는 충격은 더 크다. 손에 두 겹씩 낀 장갑도 하루에 3번 바꿔줘야 할 정도.
무릎이 아픈 수경 스님이 앞만 보고 기어가다시피 절을 하는데 비해 문 신부는 단정하게 절을 한다.
"하하, 문 신부도 잠 잘 때는 '아이구 아이구'하며 잠꼬대를 연발하던 걸."
문 신부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20분간 이동하다가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두 사람은 도로 옆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철퍼덕 누워버린다. 눈을 감고 호흡을 조절하는 그들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자원봉사팀들이 바빠진다. 일단 갈증 해소에 좋은 배즙을 한잔씩 주고 너나할 것 없이 두 사람을 안마해 준다.
하지만 10여명의 자원봉사자를 이끌고 있는 이원균 팀장(불교환경연대)은 "보름이 지나면서 두분 다 체력적으로 서서히 딸리는 것 같다"고 안타까와 했다.
분위기가 무겁다. 하는 사람은 힘들어서, 보는 사람은 답답하고 안쓰러워서.
불쑥 수경 스님이 문신부에게 농담을 던진다.
"머리가 허옇게 셌는데 지금 뭐하는 거야."
문 신부의 답변이 걸작이다.
"아무리 도로를 살펴봐도 동전 한닢 없데."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인근 성당 신부님들이 아이스크림을 싸들고 이들을 찾아왔다. 이날 아침 점심 식사는 군산 은적사에서 보내왔다. 과일과 각종 물품 등 정성의 손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 김승훈 방상복 신부, 이병철 녹색연합대표 등도 다녀갔다.
수경스님이 또 한마디한다.
"이런 호강스런 3보 1배가 어딨어."
가장 고생하는 사람이 가장 호강스럽다고 하니 다른 사람은 할 말이 없다.
왜 이런 생고생을 할까. 조심스레 물어봤다.
"단지 새만금 만이 아니지. 새만금 문제를 만든 사회의 흐름이 문제야. 이번 3보 1배가 우리 자신의 삶에 과연 어떤 문제가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 결국 우리가 변해야 사회가 변하고, 종교인만이라도 제 노릇을 했으면 이렇게는 안됐을 텐데…."
웅천읍내로 들어서 남아있던 한줌의 기력마저 소진한 뒤 천주교 동대동성당 웅천공소 앞에서 멈췄다.
이곳이 오늘 묶을 곳. 이미 선발대가 와서 텐트를 쳤다.
장지영 간사는 "오늘은 그래도 좀 낫네요. 어제처럼 완전 야외에서 텐트치고 자면 추워서 몇 번씩 잠에서 깨는데…"라고 말했다.
누군가 오늘 저녁식사는 '특식'이라고 했다. 그들은 우르르 인근 중국집으로 '짬뽕'을 먹으러 갔다.
충남보령=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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