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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3월 30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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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울산대 의대 일반외과 이승규 교수(54)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1회용 커피를 거푸 두 잔 째 마신 이 교수의 머리는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고 얼굴엔 피로감이 언뜻 스쳐갔다.
조카의 간 일부를 떼어내 외삼촌에게 이식하는 대수술이 벌써 4시간째였다. 이 교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평소에도 20∼30시간은 예사인데요 뭘. 오늘 자정은 넘겨야 할 것 같아요.”
이 교수 곁에 있던 장기이식센터 하희선 과장(42·여)도 거들었다. “이 교수님은 어제도 울산에서 한 번, 서울에서 한 번 대수술이 있어서 집에 못 들어가셨어요.” 보아 하니 그녀도 제대로 잠을 못 잔 얼굴이다. 사실 이들에게 이런 생활은 ‘일상’이다.
교수는 간이식 수술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그동안 500회 가까운 수술을 했고 성공률도 95%에 이른다. 국내 최초, 세계 최초 기록도 즐비하다. 1992년 8월 뇌사자 간이식 국내 첫 성공, 1994년 소아 생체 간이식 국내 첫 성공, 1999년 1월 ‘변형 우엽(右葉) 이식술’(간에 들어온 혈액을 원활하게 배출하도록 하는 기술) 세계 첫 개발…. 특히 ‘변형 우엽 이식술’은 생체 간 이식의 창시자인 독일 함부르크대 크리스토퍼 브롤시 교수까지 극찬한 ‘작품’이다.
서울대병원장을 지냈던 한모 교수와 대통령주치의를 지냈던 고모 교수가 97년과 98년 잇따라 이 교수에게 간암 수술을 받은 사실은 유명하다. 당시 서울대 의대 거물급 교수들이 서울대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의료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지금 몸담고 있는) 병원측도 ‘그 분들을 모시고 와서 잘못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은근히 말렸지만 난 자신 있었습니다.” 이 교수는 환자가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몇 년 전 모친이 별세해 장례식장에서 비탄에 잠겨 있을 때도 급한 환자 때문에 수술실로 돌아갔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그는 다른 교수들과 달리 토요일에 외래진료가 많다. 평일에는 수술이 많아 외래환자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보통 수술이 끝나면 수술 과정의 스트레스 때문에 폭음하는 의사들이 많다. 그러나 이 교수는 술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건강관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원래 못 마신단다. 술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수십 년 전 레지던트 시절 남 몰래 밤마다 소주를 반병씩 마신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트레이닝인 셈이죠. 그런데 주량이 전혀 늘지 않아 결국 6개월만에 포기하고 말았죠.”
이 교수는 평소 유행하는 유머 몇 개쯤은 외우고 다닌다. 그리고 수술이 길어지면서 의료진의 감각이 자칫 무뎌질 수 있는 순간 이 유머를 ‘푼다’. 후배를 위한 독특한 선배의 ‘배려’다. 이 교수가 지휘하는 의료팀은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간식을 살 때도 이 교수의 이름을 대고 그냥 나오는 경우가 많다. 셈은 이 교수가 나중에 치른다. 튼튼해야 긴 수술을 치를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지론이다.
이런 이 교수에게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 바로 하 과장이다. 알고 보면 하 과장이 없는 이 교수는 손발을 잘린 것과 다름없다.
과장은 장기이식센터의 실질적인 책임자이면서 간이식 코디네이터다. 코디네이터란 장기 이식에 관한 문의에서부터 환자관리, 사후처리까지 모두 맡아 해주는 일종의 장기이식 해결사. 현재 국내에서 50여명이 활동중인데 하 과장은 국내 첫 코디네이터다.
하 과장은 하루에도 몇 차례 이 교수와 대면한다. 이 교수로부터 수술할 환자를 인계 받아 절차를 정하고 반대로 수술이 결정된 환자를 다시 인계하기 위해서다. 수술이 끝난 환자의 사후처리를 위해서도 상의가 필요하다. 결국 수술을 뺀 모든 부분이 그의 몫이다.
간호사 출신인 하 과장이 평가하는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란 직업은 ‘보람과 스트레스가 모두 큰 직업’이다. “장기를 얻어 새 삶을 얻은 환자들을 보고 있으면 뿌듯하지만 뇌사자 가족과 접할 때는 보통 조심스러운 게 아니에요.”
하 과장도 늘 비상대기중이다. 전화기를 끼고 살아 환청이 들릴 정도다.
이 교수와 하 과장이 서로 알게 된 것도 어느 덧 14년째다. 1989년 3월 일반외과 의국장(醫局長)과 외래 책임간호사로서 처음 만났다. 92년 3월에는 독일 하노버대로 장기이식 연수를 함께 가기도 했다. 그해 8월 국내 첫 뇌사자 장기이식수술에서도 이들은 기쁨을 함께 나눴다.
그러던 중 지난해 이 교수가 장기이식센터 소장직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함께 하게 됐다. 실과 바늘이 따로 없다. 이들은 현행 장기이식법이 “매매를 근절하려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져 기증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11월 간 기증자의 사례 하나. 기증자의 순수성을 규명하기 위해 병원에서 회의를 연 결과 4 대 2로 ‘순수기증’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그렇지만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는 “만장일치가 아니기 때문에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의 항의와 설득으로 KONOS가 결국 장기이식을 허가했지만 기분이 상한 기증자가 등을 돌려 버렸다.
그러나 이들도 장기기증자와 기증 받은 환자의 만남을 금하는 현행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 교수는 환자만 수술하면 되지만 하 과장은 모든 행정적 업무까지 처리하는 바람에 냉정해진 것일까.
“순수한 기증자라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보람을 느끼고 장기를 받은 이도 감사함을 느낄텐데 굳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죠.(이 교수)”
“그렇지만 현재도 순수기증을 가장한 장기매매 가능성이 없지 않은 환경인데 무리수인 것 같아요. 상황이 개선되면 몰라도….(하 과장)”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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