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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월 7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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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객주’를 쓸 당시 조선 후기 상업사에 대한 자료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서점 서가를 손이 닳도록 뒤지기도 했고, 적확한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곤 했지.”
그는 “지금 ‘객주’를 다시 쓰라고 한다면 손사래치면서 도망갈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40대 김주영의 근력과 열정으로,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삶과 애환을 맛깔스러운 우리말로 솜씨 좋게 부려놓은 ‘객주’가 2003년의 시작과 함께 독자들 앞에 다시 돌아왔다.
1981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초판본을 내기 시작해 1984년 완간된 ‘객주’는 20여년이 지나 ‘문이당’으로 주소를 옮겼다. 김주영의 저작을 모두 한 출판사에 모으기 위함이다. 판권을 이전하면서도 ‘창비’는 여러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개정판을 내기 위해 그는 ‘객주’를 꼼꼼하게 다시 점검하며 읽었다. ‘객주 다시 읽기’ 작업에 작가는 반년을 매달렸다. 2003년에 ‘객주’를 읽는 이들을 위해, 페이지마다 생소한 단어에 각주를 달고 난해한 한자성어는 풀어 썼으며, 문장도 ‘현대적’으로 다듬었다.
지금 ‘객주’는 어떤 의미로 다시 읽힐 것인가. 7일 만난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대가 급속한 경제성장에 경도돼 있습니다. 거대한 것을 바라고 빨리 살아가려는 사람들 일색이지요. 추수 끝난 밭에 떨어진 이삭을 다시 챙겨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역사의 배면에 숨어 산 이들에게 담긴, 사소하고 하찮지만 소중한 것을 헤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밑바닥’ 삶을 살지만, 왜 이런 인생을 사는지 탄식하거나 통곡하지 않는다. 김씨는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삶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 그저 그것이 삶이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5년간의 사료수집, 3년간의 장터 순례, 200여명에 이르는 인물 취재로 19세기 구한말 상업자본의 형성과정과 사회상을 생생하게 재현한 ‘객주’는 그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밤을 새워가며 단어를 찾고, 그래도 흡족한 단어가 없어 새벽에 문 밖에 나가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지요. 한 건장한 남자가 자기 모든 것을 바쳐서 해볼 만한 작업이 바로 소설 쓰기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는 저잣거리를 배경으로 하는 ‘객주’를 쓰기 위해, 방방곡곡 가보지 않은 장터가 없다.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시골장터를 다니면서 장터 사람들이 하는 말을 녹음하고, 받아 적었습니다. 돌아와서 사전을 일일이 뒤지면서 단어를 정리하고, 또 사전에 없지만 꼭 필요한 단어는 그대로 쓰기도 했지요. 사전에 없는 말이 20% 정도 됩니다.”
‘객주’는 지금까지 ‘창비판’으로 5만여질이 판매됐고, 지난해 12월말부터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실시한 예약판매에 이미 350여질의 주문이 들어왔다.
“소설 1편을 쓸 때마다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라는 이 중진작가는 “‘객주’를 다시 살피면서 삶에 대한 긴장을 팽팽히 당겨야 했다”며 “나는 늘 신인이며, 처음 작품을 출간하는 작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진다. 그래야 썩지 않는다”고 힘주어 얘기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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