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리포트][책]'스미스 바니' CEO 크로첵의 월가 성공스토리

  • 입력 2002년 12월 5일 16시 11분


셀리 크로첵은  ‘포천’ 5월호의 표지인물로 선정됐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셀리 크로첵은 ‘포천’ 5월호의 표지인물로 선정됐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샐리 크로첵.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성이다. 올해 37세. 깔끔한 외모와 빈틈없는, 자신만만한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미 월스트리트에서 이름을 날렸다. ‘기관투자가’ 잡지는 30대 초반의 나이이던 그를 3년 연속 ‘올스타 애널리스트’로 뽑았다. 금융잡지 ‘머니’는 최근 그를 ‘직사포(直射砲·The Straight Shooter)’라고 표현했다. 꼼수나 트릭을 쓰지않고 원칙을 지켜가며 일하는 애널리스트라는 의미다.

경제잡지 ‘포천’은 5월호 ‘마지막 남은 정직한 애널리스트를 찾아서’라는 특집기사에서 “수천개 기관 고객을 상대로 독립적인 주식 리서치를 해오고 있다”며 그를 극찬했다. ‘거품 시대’에 당대 증권시장의 실력자로 이름을 날렸던 헨리 블로젯이나 잭 그루브먼 등 스타 애널리스트들이 자신의 회사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보고서를 왜곡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불명예 속에 퇴장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포천’은 최근 그를 ‘미국의 가장 파워풀한 여성 기업인’ 중 한 명으로 꼽았다. 그는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글로벌 기업인 15명’에도 들어 있다.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그는 누구인가.

▽명함〓‘스미스 바니 최고경영자(CEO)’다. 이 회사는 세계 최대의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의 자회사 살로먼 스미스 바니의 한 부문으로 주식 리서치 및 개인고객 주식투자 업무를 다룬다. 최근 기관투자가들로부터 최고로 꼽히기도 했던 이 회사 리서치 부문은 272명의 세계 일류급 애널리스트가 2700개 기업을 커버한다. 개인고객 부문에선 세계 500여개의 오피스에서 1만2500명의 금융 컨설턴트들이 투자상담 자금관리 등을 맡아 하고 있다.

씨티그룹 샌포드 웨일 회장이 이 회사 설립과 함께 크로첵씨를 대표로 선임한다는 발표를 하고 그가 고용계약서에 서명을 한 것이 10월 30일이니 바로 5주 전의 일이다. “정직하게 일한 당신, 큰 물에서 놀아보라”는 초청장이었다. 크로첵 대표는 웨일 회장에게 직접 업무보고를 하며 씨티그룹 경영자 회의에 참석한다. 씨티그룹이 그를 영입한 것은 리서치 부문과 투자영업이 별개로 움직인다는 점을 내세워 월스트리트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보수〓연봉 외에 그가 받은 스톡옵션은 씨티그룹 주식 75만주다. 2012년 12월까지 주당 37.65달러에 매입할 수 있는 조건이다. 2003년 11월부터 5년간 매년 15만주씩 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옵션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1120만달러(약 134억4000만원).

▽일하는 스타일〓스미스 바니의 대표로 화려하게 스카우트되기 전에 그는 월스트리트의 작은 조사전문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샌포드 C 번스타인’사였다. 이 회사는 독립회사다. 메릴린치나 JP모건체이스처럼 투자은행 업무를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의 다른 부문 업무지원을 위한 ‘왜곡조사’를 할 위험이 없는 순수 조사회사다.

별로 웃기지 않는 그의 농담 한 토막. “나는 (보고서 작성 대상) 기업 경영진이 거짓말을 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거짓말을 하는 CEO의 입술은 떨리기 마련이다.” 이 정도로 그는 자신의 업무에서 ‘정직과 진실’을 추구한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기업비리 스캔들 이후 제대로 된 기업분석 보고서를 찾는 고객들은 그가 대표로 있던 번스타인으로 몰려왔다. 월가의 최고스타로 이름 값이 더욱 치솟은 그는 “과거엔 거래를 하지 않던 많은 기업이 제발로 찾아와 거래를 텄다”고 표현했다. 이 시절 그는 최고 애널리스트가 아니면 직원으로 뽑지 않았다. 최고를 구할 수 없으면 자리를 비워두었다.

▽경력〓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고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MBA)을 나왔다. 살로먼 브러더스를 거쳐 ‘도널드슨, 러프킨 & 젠레트’라는 투자은행에서 기업금융을 다뤘다. 1994년 번스타인에서 주식리서치를 시작했고 1997년부터 금융산업을 담당하자마자 가장 영향력있는 애널리스트로 월가에서 우뚝 섰다.

▽그의 주변〓부친 레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네 딸이 있는 집안에서 자랐는데 ‘제대로 주장을 펴거나 아니면 아예 입을 벌리지 말아야 하는’ 분위기였다고 그는 회상한다. 고교 시절 육상선수로 높이뛰기에서 주(州) 1위를 했다. “고교 시절 내 관심은 멋진 아이와 데이트하는 것과 치어리딩뿐이었다”고 말하는 그를 두고 한 교사는 “샐리는 너무 귀여운 것이 문제였다”고 회고했다. 도널드슨에서 만난 동료 개리 애펠과 결혼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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