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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8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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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핀 해바라기꽃은 사북의 뒷골목에서 작가가 본 것을 그렸다. 가라앉은 색조를 배경으로 노란 해바라기꽃잎이 두드러진다. 작가는 이처럼 어둠속에서 밝음을 보는 눈으로 사북을 그려냈다. 사진제공 인사아트센터
전시장에서 만난 그의 모습 역시 ‘사북’이라는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다. 푸른 색으로 염색 코팅한 짧은 머리는 짙은 청색 니트 티셔츠와 함께 그의 얼굴을 더욱 동안처럼 보이게 했다.
“왜 하필 사북인가”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서 오래 생활한 나는 솔직히, 사북을 몰랐다. 역사도 몰랐다. 5년 전 정선 여행길에 우연히 지나다, 처음 사북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 온통 까만 세상에 인적은 드문데 단색조의 파랑 빨강 페인트, 촌스러운 커튼이 묘한 신비를 자아냈다. 한바탕 전투를 치러 낸 폐허같은 도시를 이곳저곳 거닐어 보니 한쪽에선 작부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가전제품들, 자물쇠로 채워진 문 앞에서 이것들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 갔을까, 하염없이 생각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사북의 색과 분위기에 반한 것이다.”
그는 사북을 통해, 가깝게는 7년 전 1년간 살았던 뉴 멕시코 고원도시 ‘산타페’에서 느꼈던 초 현실주의적 분위기를, 멀리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슬픔과 정겨움과 따뜻함을 발견한 것이다.
작가는 그 후 5년 동안 계절마다 사북을 드나들면서 이념을 걷어 내고 ‘직감’으로 140여점을 그렸다. 18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열리는 그의 그림 전에는 40여점이 걸렸다. 때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 지겨워진 일상이 이렇게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전시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