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 작품 전시회

  • 입력 2002년 10월 11일 17시 47분


줄리아노 반지작 '얼굴을 두손으로 가린 남자'

줄리아노 반지작 '얼굴을 두손으로 가린 남자'

여기 담을 뛰어 넘으려 애쓰는 남자가 있다. 꽉 다문 입술, 쾡한 눈동자, 긴장할 대로 긴장한 얼굴 근육, 붙잡은 담벼락에 그대로 배길 듯 힘이 잔뜩 들어간 손가락. 그의 몸짓과 표정은 너무 힘겨워 보인다. 그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것일까.

그가 뛰어 넘으려는 담은 과연 무엇일까. 남자의 얼굴을 보면, 삶의 버거움에서 도망치고 싶은 내 모습이 겹쳐진다. 우리 모두는 저 남자처럼 뭔가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절실한 순간이 있지 않았던가.

생존하는 이탈리아 최고 원로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71)의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은 이처럼 극적(劇的)이다. 그가 평생 몰두해 온 대상은 오로지 인간이다. 그것도 힘과 생에 대한 확신을 갖춘 인간이 아니라 고통 속에 좌절하고 놀라는 유약하고 불안정한 인간들이다.

반지는 좌절, 슬픔, 희망, 사랑 같은 특정한 순간에 개인이 겪는 절실한 감정 상태를 포착, 물화(物化)시켰다. 관객들은 ‘저건, 바로 내 모습’이라는 동질성과 내면을 들킨 듯한 섬뜩함을 함께 느낀다.

작가는 대리석, 화강암, 동, 상아, 금, 마노, 산호 등 다양한 재료를 연마해 대상을 표현한다. 한 작품 속에 다양한 재료를 혼합하여 사용함으로써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질감과 색채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세속에 물들지 않을 것 같은 순수하고 단단한 재료로 세속적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해 묘한 대조가 느껴진다.

서울 청담동 박여숙 화랑은 ‘줄리아노 반지가 펼치는 인간의 드라마’라는 제목으로 14∼31일 전시회를 연다. 지난 4월 일본에서는 전용 박물관가지 개관돼 ‘20세기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는 그의 성가를 짐작케 한다. 국내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02-549-7574∼6.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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