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破 鏡(파경)

  • 입력 2002년 10월 8일 17시 27분


破 鏡(파경)

破-깨뜨릴 파 鏡-거울 경 飮-마실 음

徵-부를 징 銅-구리 동 輝-빛날 휘

중국의 南北朝(남북조)시대를 통일한 왕조는 隋(수)나라다. 하지만 隋나라 초기, 중국의 강남지방은 아직 陳(진)이 장악하고 있었다. 陳의 마지막 황제인 後主(후주)는 우둔한 군주였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飮酒(음주)와 歡樂(환락)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궁중 관리 徐德言(서덕언)은 隋나라 楊堅(양견)의 大軍이 이미 도읍 南京(남경)의 교외까지 進軍(진군)해 왔다는 소식을 듣자 국가의 社稷(사직)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아내인 樂昌公主(낙창공주)에게 말했다.

‘머지않아 당신은 노예가 되어 隋나라의 귀족에게 잡혀갈 거요. 하늘이 도우신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우리 徵表(징표)로 이것을 가집시다. 내년 정월 대보름 날, 長安(장안)의 길거리에서 팔도록 하시오.’

하고는 가지고 있던 銅鏡(동경)을 두 쪽으로 깨뜨린 다음 나누어 가졌다. 과연 그의 예언은 적중하여 陳나라는 망하고 아내는 隋나라 귀족 楊素(양소)의 노예가 되어 長安으로 잡혀갔다.

이듬해 정월 대보름 날, 徐德言은 長安의 길거리를 헤매다 왼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 한 사람이 깨어진 거울을 팔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워낙 高價(고가)였으므로 팔리지는 않고 사람들만 웅성거렸다. 徐德言은 슬그머니 다가가 맞추어 보았다. 영락없는 아내의 거울이 아닌가? 그는 아내의 거울 뒤쪽에다 자신의 심정을 짤막한 시로 적어 보냈다.

鏡與人俱去(경여인구거)-거울과 사람이 함께 떠나가더니 鏡歸人不歸(경귀인불귀)-거울만 돌아오고 사람은 오지 않네 無復嫦娥影(무복항아영)-거울에 비친 그대 모습 더 이상 볼 수 없고 空留明月輝(공류명월휘)-텅 빈 하늘에는 보름달만 휘영청 그 때부터 아내는 食飮(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했다. 나중에 까닭을 알게 된 楊素가 두 사람의 애타는 심정을 이해하여 樂昌公主를 되돌려 보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옛날과 다름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말은 살아있는 有機體(유기체)와 같아서 生老病死(생노병사)를 거듭한다. 그래서 자주 사용되는 말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지만 그렇지 않은 말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또 말은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본디 뜻이 달라져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破鏡이 좋은 예다. 지금은 ‘부부 사이가 나빠져 헤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다시 합쳐지기 위해 일부러 거울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破鏡重圓(파경중원)의 略語(약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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