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이응노, 60년대 추상화 모은 ‘묵과 색’展 12월21일까지

  • 입력 2002년 10월 4일 18시 10분


“나는 한국의 민족적인 추상화를 개척하려고 노력했다. 동양화의 선(線), 한자 한글의 선(線)의 움직임에서 출발해…소박하고 깨끗하고 고상하면서 세련된 우리의 율동과 기백을표현하는 것이 나의 그림이다.”

1970년대초 고암 이응노(1904∼89)는 이렇게 말했다. 독특한 추상 미술로 유럽 미술계를 놀라게 할 때였다.

고암의 유명한 문자추상(70년대)과 군상 연작(80년대)의 단초를 보여주는 60년대 추상화가 한 자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에서 12월21일까지 계속되는 ‘60년대 이응노 추상화전-묵(墨)과 색(色)’.

파리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한 1960년대의 추상화 소품 120점이 전시된다. 모두 미공개작.

전시작들은 소품이나 대작 못지 않게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필법의 대범함이 두드러진다. 추상이지만 문자 모양을 띠기도 하고 문자는 사람의 형상을 띠기도 한다. 사람이 글씨가 되고 글씨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형상일 때는 고암의 말처럼 율동감이 넘쳐난다. 획 하나 하나엔 꿈틀거리는 어떤 기운이 숨겨져 있다. 그의 추상은 따라서 삶의 족적을 담고 있다.

이응노의 1966년작 ‘사람’(왼쪽)과 1967년작 ‘컴포지션’.사진제공 이응노미술관

고암 추상은 동물의 형상이기도 하고, 풍경을 수놓은 나무이기도 하고 꽃이기도 하다. 사람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된 추상이었다. 이같은 작품은 그의 문자 추상과 군상 연작의 발판이 되었다.

60년대 고암의 추상엔 동양화 특유의 시적인 흥취와 모두 한국적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점과 선의 추상이지만 그 점과 선 사이로 여백의 미학이 돋보인다. 은은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룬다.

먹물이나 채색 안료를 헝겊에 묻혀 종이 위에 살짝 찍고 그 위에 다시 붓으로 점과 선과 점을 완성하는 표현 기법이나 화선지에 먹이 스며들도록 해 번짐의 효과를 보여주는 표현 기법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응노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고암 학술논문상을 공모한다. 마감은 12월31일. 월요일 휴관. 02-3217-5672.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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