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이연숙/日신세대 애국심의 정체는

  • 입력 2002년 10월 4일 17시 50분


◇쁘띠 내셔널리즘 증후군-젊은이들의 닛뽄주의/가야마 리카(香山りか) 지음/쥬오고론신샤(中央公論新社) 2002년

가야마 리카(香山りか)는 정신과 의사이자, 현대인 특히 젊은이들의 마음의 병에 대해 매우 참신하고 활발한 발언을 하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이 번에 소개할 책은 월드컵 경기 때 나타난 일본 젊은이들의 내셔널리즘을 다룬 책이다. 제목의 ‘쁘띠내셔널리즘’의 ‘쁘띠’란 프랑스어로 ‘조그마한’ ‘귀여운’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일본에서는 ‘조그마하고 귀엽다’는 것을 멋있게 표현하고 싶을 때에는 이 ‘쁘띠’란 형용사를 즐겨 쓴다. 예를 들면, 귀엽고 작은 토마토를 한국어로 ‘방울 토마토’라고 하는데, 일본어로는 ‘쁘띠 토마토’라고 한다.

그런데 ‘쁘띠 토마토’가 아닌 ‘쁘띠 내셔널리즘’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 번 월드컵 때 경기장에 몰려 든 일본의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손에는 ‘일장기’를 들고, 얼굴에는 ‘일장기’를 그려 넣고, ‘일장기’ 머리띠를 두르고, ‘일장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는 ‘우리 임금님의 시대는∼’으로 시작되는 록 가수의 ‘기미가요(君が代)’에 일제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런 광경에 국수주의적인 내셔널리즘의 기운이 짙게 감돌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국위선양’에 직결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나라를 응원하는 것이 뭐가 나쁘지?’ ‘즐거우면 좋은 것 아니야?’라는 것이 그들의 소박하고 솔직한 감각이다. 누군가가 전전(戰前)의 국수주의나 군국주의를 이야기하려 하면, ‘그런 옛날 일은 몰라요’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라며 오히려 반문한다. 그들에게 ‘역사’나 ‘현실’ 문제는 완전히 관심 밖의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 젊은이들은 ‘구김살 없고’ ‘밝은’ 것이다. 예를 들어 소녀들은 천황집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머머, 굉장하다 굉장해”라며 함성을 올린다. 또 야구 선수 이치로가 ‘미국에서 수위타자가 됐다’는 뉴스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즉, 이들에게 내셔널리즘이란 ‘국가’의 존재양식이 아니라 자기들의 기분을 고양시켜 주는 흥분제인 것이다. 이 ‘구김살 없는’ 내셔널리즘을 일컬어 저자는 ‘쁘띠 내셔널리즘’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가야마는, 정신의학의 ‘분리(分離)’와 ‘해리(解離)’란 개념을 사용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분리(分離)’란 개인이 감정의 세계를 둘로 떼어놓음으로써 스트레스나 갈등에 대처하는 것이며, ‘해리(解離)’란 의식이나 인격 그 자체를 복수로 분열시킴으로써 스트레스나 갈등에 대처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둘 다 현실의 스트레스나 갈등을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고, 어려운 문제는 ‘나와 상관없다’고 도피하고 마는 태도인 것이다. 물론 이런 증상은 정신병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저자는 ‘쁘띠 내셔널리즘’에 도취하는 젊은이들에게서 이 분리와 해리라는 병리적 현상을 보고 있다. 이 같은 증상에 빠지면, 자기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단지 그때 그때의 유행만이 자기의 참된 욕구라고 착각하게 된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은 ‘구김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쁘띠 내셔널리즘’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흉악한 내셔널리즘’으로 전화할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도취나 고양에 어떤 을씨년스러움마저 느껴진다고 말한다. 본디 집단이 한 덩어리가 되어 똑같은 소리를 질러대며 열광하는 것은 섬뜩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 때 그들은 아마도 노신의 ‘아큐정전’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군중들의 이리 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희생양이 눈앞에 있으면 함성을 올리며 게걸스럽게 먹어 댈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처형을 갈망했던 군중심리 그 자체이다. 만약 그 같은 집단적 열광을 보고서도 을씨년스러움이나 역겨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쁘띠 내셔널리즘증후군’에 걸려 있음에 틀림없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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