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角 逐(각축)

  • 입력 2002년 10월 3일 17시 12분


角 逐(각축)

角-뿔 각 逐-쫓을 축 濫-넘칠 람

觴-술잔 상 豕-돼지 시 炭-숯 탄

角은 동물의 뿔에서 나온 글자다. 그럴 것 같지 않지만 漢字(한자)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甲骨文(갑골문)을 보면 영락없는 뿔의 모습이다. 그 뒤 여러 단계를 거쳐 현재의 글자체인 楷書(해서)로 정착되었으므로 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角’이 들어 있는 글자, 이를테면 解(해), 觸(촉), 觴(상) 등은 모두 ‘뿔’과 관계가 있는 한자들이다.

쇠뿔이나 물소뿔은 속이 텅 비어 있다. 그래서 가끔 술잔으로도 이용했는데 이 때문에 角이라면 ‘술잔’의 뜻도 있다. 얼마 전 ‘濫觴’(남상)을 설명하면서 觴이 물소뿔로 만든 잔이라고 한 적이 있다.

참고로 나무로 만든 잔을 杯(배)라 하며 같은 뜻의 글자에 盃(배)가 있는데 杯의 俗字(속자)다. 또 盞(잔)은 낮고 작은 잔을, 爵(작)은 쇠로 만든 발 달린 술잔으로 좀 큰 잔이다. 물론 뿔의 끝은 뽀족했으므로 角은 ‘모퉁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한편 逐은 쉬엄쉬엄갈착(움직일 착)과 豕(시)의 합성자다. 쉬엄쉬엄갈착은 발의 모양에서 따온 글자로 ‘동작’을 나타낸다. 이 때문에 쉬엄쉬엄갈착으로 이루어진 한자는 모두 움직임과 관계가 있다. 進退(진퇴), 運送(운송) 등등. 여기에 ‘돼지’를 뜻하는 豕가 있으므로 자연히 우리를 뛰쳐나온 돼지를 잡기 위해 뒤쫓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쫓을 축’자다.

야생동물을 소개하는 TV를 보노라면 수컷 여러 마리가 한 마리의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을 접하는 수가 많다. 또 자신의 領域(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분비물을 발라 독특한 냄새를 풍김으로써 ‘이 곳은 내 땅’임을 과시하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다. 야생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種族保存(종족보존)과 領土(영토)保存의 본능이다. 이 두 가지를 침해하면 그야말로 本能的으로 대항한다. 그런데 ‘本能’이고 보니 다툼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즐겨 사용하는 무기가 뿔이다. 이른 바 角逐戰(각축전)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싸우는 것도 동물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게 없었던 모양이다. ‘땅’을 뺏기 위해 싸우곤 했는데 뿔 대신 ‘창이나 칼’을 사용했을 뿐으로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가 대표적인 경우다. 백성은 塗炭(도탄)에 빠지고 천하는 混亂(혼란)에 휩싸였다. 오죽했으면 짐승들이 本能에 좇아 싸우는 모습을 인간에게 적용시켰을까.

이제는 땅 뿐만 아니라 돈 때문에 ‘角逐’을 벌이는 사람이 많다. 차츰 짐승이 되어 가는 듯하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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