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望門寡(망문과)

  • 입력 2002년 9월 24일 18시 43분


望門寡(망문과)

寡-과부 과 枷-칼 가 嫁-시집갈 가

偕-함께 해 毁-헐 훼 錮-벼슬¤을 고

‘守節’(수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守節의 비인도적인 점이나 처절함은 이루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기야 人權이니 人道的이란 말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옛날에는 그것을 탓할 아무런 잣대도 없었다. 그저 ‘禮敎’(예교)라는 칼(枷)만이 온 천하를 옥죄고 있을 뿐이어서 불쌍한 民草들만 그 속에서 신음할 뿐이었다. 그러니 ‘사람잡는 禮敎’라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

守節이 강조됨으로써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改嫁(개가)의 금지며 여기에서 소위 寡婦(과부)가 출현하게 된다. 守節이 극도로 중시되었던 중국 明나라나 우리나라 朝鮮時代의 경우, 女性이라면 거의가 일생에 한 번쯤은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子女가 있고 또 어느 정도 偕老(해로)한 뒤에 寡婦가 되었다면 그나마 多幸(?)이겠지만 한창 나이에 靑霜(청상)寡婦가 되었다면 딱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 비참한 경우가 있었으니 소위 ‘望門寡’라는 것이다. 우리의 ‘마당 寡婦’다. 옛날 우리나 중국에서는 早婚(조혼)이 성행했기 때문에 보통 열 두서너 살이면 結婚했다. 하지만 미처 結婚도 하기 전에 約婚者(약혼자)가 죽으면 神主(신주)와 함께 결혼식을 거행한 다음 신방에서 평생토록 守節해야 했다.

이 경우, 친부모조차도 자기 딸에게 披麻帶孝(피마대효·약칭 披麻라고도 함. 喪服을 입고 시부모에게 효도를 다함)를 요구했으며 동정은커녕 家門에 닥칠 화가 두려워 행여 딸이 毁節(훼절)하지나 않을까 감시자 노릇을 하기까지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出嫁外人’(출가외인)이라 하여 설사 혼인관계가 깨어졌다고 해도 친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어도 시집 鬼神이 되라!’는 말은 신앙처럼 받들어졌다. 守節寡婦로 平生을 마치도록 강요했던 것이다.

당사자도 도덕적 지탄은 물론 장차 벼슬길에 오를 수 없게 될 자식의 將來(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일생토록 守節해야 했고, 男子는 남자대로 子孫의 禁錮(금고)를 염려해 再嫁女를 얻지 않았다. 자연히 도덕적, 제도적으로 守節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었던 것이다.

그 결과 悲劇(비극)도 많았다. 비단 문학작품이 아니더라도 역사의 기록을 보면 이처럼 잘못된 관습에 自殺을 택함으로써 몸을 던져 저항한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媤父母의 모진 학대에 스스로 목을 맨 경우도 많았다. 지금 말로 ‘制度的 殺人’이었던 것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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