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原典연주…옛 악기로 떠나는 음악의 시간여행

  • 입력 2002년 9월 1일 17시 35분


24일 내한연주 포저  30대의 젊은 나이에 바흐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격찬을 받고 있는 원전연주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사진제공 LG아트센터

24일 내한연주 포저 30대의 젊은 나이에 바흐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격찬을 받고 있는 원전연주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사진제공 LG아트센터

《원전연주란…정격(正格)연주 또는 고악기(古樂器)연주라고도 불린다.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법을 철저히 되살려 연주하는 연주 스타일 또는 운동으로, 2차대전 이후 서스톤 다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에 의해 시작됐다. 1980년대 이후 대중화에 성공, 오늘날 유럽에서는 바로크시대 음악 연주의 경우 원전연주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원전연주가들은 악기와 연주법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점을 중시한다.

악기의 경우 관악기는 ‘키’와 ‘밸브’(누름쇠)가 달리지 않은 19세기 초반 이전의 악기를, 현악기는 19세기 후반 등장한 금속제 현 대신 양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를 사용해 더 작고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악기 외에 연주속도, 강약, 소리를 떨어내기(비브라토) 등도 철저한 고증을 거친 뒤 연주한다.》

음높이를 미세하게 바꾸는 ‘로터리 밸브’가 19세기에 발명되기 이전 사용된 ‘내추럴 호른’. 이 호른은 한정된 가짓수의 음높이 밖에 낼 수 없었다(위). 아래는 길이가 다른 두 관(管)을 합치고 로터리 밸브를 단 현대식 호른.

상륙 20여년만의 교두보 확보인가. 국내 공연계에 ‘원전(原典)연주 바람’이 불고 있다.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법을 고증해 재현하는 원전연주는 1980년대 초중반 라이센스 LP 음반으로 처음 소개된 뒤 소수 음반 마니아의 거실에서만 관심을 끌어왔다. 90년대 중반 이후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 등 외국 연주가들이 간헐적으로 내한공연을 가졌지만 다수 음악팬의 관심을 끄는 ‘바람’으로는 연결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의 원전연주 바람은 청중의 확대와 ‘자생 원전연주’의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먼저 9월은 공연사상 유례없는 원전연주의 풍년을 예고하고 있다. 24일 영국의 원전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가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고, 27일에는 원전악기 첼로연주의 원로격인 아너 빌스마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을 갖는다. 이에 앞서 10일에는 금호아트홀이 일본의 원전악기 앙상블 ‘콘베르숨 무지쿰’을 초청, 원전연주에 의한 비발디 ‘사계절’을 처음 선보일 예정.

‘사계절’은 80년대 초 여러 원전연주 음반이 소개되면서 한국에 처음으로 ‘원전바람’을 불러온 레퍼토리 중 하나. 금호아트홀은 이 공연을 시작으로 매년 4∼5회 원전음악 연주회를 시리즈로 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혜자 금호문화재단 상무는 “최근 내한연주가들의 원전연주 콘서트가 관객동원과 평가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어 시리즈 연주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전연주 ‘토착화’의 기운도 왕성하다. 올해 4월에는 국내 최초의 원전연주 악단 ‘무지카 글로리피카’가 선을 보였다. 바이올린 연주자 김진씨의 주도로 4월 18일 창단연주를 가졌다. 아직은 매회 참가자를 섭외하는 ‘프로젝트 그룹’이지만, 해외에서 원전악기를 전공한 연주가들이 속속 귀국하고 있으므로 곧 ‘상설화’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

원전음악 연주가 단체인 ‘한국 고음악협회’도 4월에 발족했다. 오자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오르가니스트)를 회장으로 매년 2회의 음악회와 특강 등을 가질 계획.

오자경 회장은 “고음악협회의 발족은 고전 낭만주의 음악에 치중한 한국 음악팬의 음악 ‘편식’을 바로잡을 기회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일본은 이미 원전연주 선진국▼

스즈키 마사아키

8월19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원전연주 콘서트에는 일본인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시게루 사쿠라이가 출연했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조상격인 악기. 지난해 이탈리아 연주자인 파올로 판돌포가 처음 국내에 선보일 정도로 한국에는 낯선 악기이기에 ‘일본 내에서 이 악기를 전공했다’는 그의 말은 충격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일본은 1960년대 이미 많은 원전연주 단체가 출현했다. 2월 내한공연을 가진 ‘콜레기움 무지쿰 텔레만’도 63년 창단돼 국제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원전연주 악단이다.

최근에는 교회음악 전문악단 ‘바흐 콜레기움 저팬’이 세계적 음반사 BIS에서 바흐 교회음악 앨범을 연속 발매, 대 호평을 받았다.

“문화적 성장배경이 판이한데 어떻게 원전연주로 바흐를 연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바흐 콜레기움 저팬의 지휘자 스즈키 마사아키는 당당히 밝혔다.

“바흐가 믿은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같은 분이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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