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사람]'홍위병'표현 명예훼손訴서 이긴 이문열씨

  • 입력 2002년 8월 18일 18시 59분


“일부 시민단체 등이 펼치고 있는 다양한 안티운동은 저급한 방식의 ‘대중주의’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안티운동이란 문자 그대로 네거티브문화죠.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엘리트주의는 최상급의 성취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주의와 반(反)엘리트주의가 만연한 시대에는 성취에 대한 상찬보다는 공격이, 긍정적 평가보다는 무조건적인 폄훼가 인기를 끌죠. 그래서 오늘날 대중에 아첨하는 세태가 정치 문화 학술 등 온갖 영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봅니다.”

시민단체를 ‘홍위병’에 비유한 칼럼으로 인해 시민단체로부터 피소됐다가 최근 승소한 소설가 이문열씨(54·사진). 그는 18일 홀가분한 표정으로 요즘 세태를 보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지난해 이씨는 정부의 언론세무조사를 지지한 일부 시민단체를 신문칼럼에서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시민단체들은 이씨의 책을 모아 ‘책 장례식’을 열었고 이어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칼럼의 ‘공공성’ 과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서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어느 정도 명예회복을 이룬 셈이다. 이씨는 “그동안 걱정하던 것보다 아직도 세상에는 합리성이 존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사실 그는 자신이 시민단체의 ‘표적’이 된 데 조금은 억울한 심정을 갖고 있다.

“98년 이 정권이 들어선 뒤 하고싶은 말은 많았지만 ‘꾹 참은’ 결과 신문에 쓴 칼럼이 다섯 편에 불과합니다. 문화칼럼을 제외하면 단 세 편의 글 때문에 정치적 문인의 대표인양 취급됐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숨을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똑같이, 작품을 통한 발언과 칼럼을 통한 직접 발언을 병행할 생각. 그러다 또 소송이 제기된다면 어떡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종류의 소송은 제기한 측이 이길 확률이 극히 희박해요. 소송을 건 쪽도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송에 임하는 절차가 얼마나 피곤합니까. 단지 상처를 내고 괴롭히기 위해 소송을 하는 거예요. ‘의식’이 있다는 사람들이 단지 이런 목적으로 송사를 남발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요.”

이번 소송을 치르면서 얻은 것도 있다. ‘내가 건강해야 한다’는 오기가 발동했기 때문. 그래서 3월부터 담배도 끊었다. 담배 생각이 날 때면 ‘내 건강 해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라는 생각을 떠올린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우선 작품의 목록을 넓히는 게 가장 큰 목표다. 누가 뭐래도 나는 작가가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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