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일본의 ´신인류´]일본 고교생들의 여름방학 ‘느긋’

  • 입력 2002년 8월 1일 16시 19분


게이오고교 3년생들. 다케우치(왼쪽)는 벌써부터 변호사 시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스즈키는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여념이 없다.

게이오고교 3년생들. 다케우치(왼쪽)는 벌써부터 변호사 시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스즈키는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여념이 없다.

교육과정이나 방식에 있어 그야말로 ‘자립형’인 일본의 사립학교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일본 최고의 사학으로 꼽히는 요코하마의 게이오고교에서 7월 18일 오후 3학년생 다케우치 타다시(17)와 스즈키 슈헤이(18)를 만났다. 유급생을 제외하고 98%의 학생이 게이오대의 원하는 학부에 동계(同系) 진학하기 때문에 ‘수험생’ 생활과는 거리가 멀지만, ‘고교생’으로는 이상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다케우치는 방학을 앞두고 ‘ESS(English Speaking Society)’라는 학내 영어 동아리에 가입했다. 최근엔 ‘레 미제라블’ 영어 연극의 상연을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고, 주 1회씩 벌어지는 영어토론회에도 참석한다. 주제는 ‘고교생은 어째서 성인이 아닌가’라는 진부한 것부터 ‘일본국적은 아무나 취득할 수 있는 건가’처럼 국가 인종문제가 얽힌 미묘한 문제까지 다양하다. 테니스 농구동아리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방학 중에는 주 2회 정도 경기 스케줄이 있어 편한 날에 나와 뛰면 된다. 운동이 끝나면 꼭 함께 점심을 먹기 때문에 선후배 간에 안면을 트기에도 좋다.

토론을 좋아하는 그는 아예 ‘전국유스포럼’이라는 전국고교생연합 토론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미국 하와이의 게이오고교 분교로 여름방학 동안 유학을 떠나는 친구들도 있지만 다케우치는 “영어는 많이 접하겠지만 하와이는 오래 있으면 따분할 것 같다. 설득기술은 토론회를 통해 더 많이 느는 것 같다”고 말한다.

스즈키 역시 주위에서 ‘영어로 말을 할 수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는 역전유학원(驛前留學院)으로 명성이 있는 ‘노바(NOVA)’에서 영어 말하기 학습 CD롬을 구입해 매일 50분씩 연습한다. 가끔씩은 게이오대 출신 미국유학생에게 2시간에 6000엔(약 6만원)을 주고 발음이나 표현법 등을 교정받는다.

‘윤택한 방학’을 보내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다. 스즈키는 방학에 게이오대 취업정보실에서 시간당 1000엔(약 1만원)을 받고 주 4회 6시간씩 일한다. 기업관계자들과 학생들로부터 구인구직 신청 전화를 받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8월에는 번 돈으로 미토(水戶)시에서 열리는 음악페스티벌에 참가할 작정이다. 2박3일 동안 록그룹의 콘서트를 보고 각지에서 온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도쿄에서 150㎞쯤 떨어져 있는 이곳으로 갈 때 친구들과 자전거 하이킹을 할 예정이다.

스즈키는 희망이 변호사로 게이오대 법률학과 진학이 예정돼 있다. 게이오대 캠퍼스에서 산책하다가 ‘사법시험 설명회’ 공지를 보면 바로 참가한다. 유명 법률학원의 인터넷 사이트로 들어가 공부방법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기도 한다. 스즈키는 “8년씩 수험을 준비하는 선배들의 이야기도 많아, 이번 겨울방학쯤에는 공부를 시작하려 해요”라고 말했다.

요코하마〓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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