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국제철학심포지엄]"러시아, 새로운 길 찾아 배회한다"

  • 입력 2002년 5월 30일 18시 43분


서구자본주의의 물결이 곳곳에 들어와 있는 러시아의거리에서 사람들은 사회주의의 추억과 불안한 자본주의의미래 사이를 배회한다.
서구자본주의의 물결이 곳곳에 들어와 있는 러시아의
거리에서 사람들은 사회주의의 추억과 불안한 자본주의의
미래 사이를 배회한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에서 20∼25일 열린 ‘한러 국제 철학 심포지엄’은 오랫동안 계획되고 치밀하게 준비된 격조 높은 학술회의였다. ‘21세기 철학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다소 광범위한 주제였지만 발표된 10개의 논문들은 마치 공동 작업을 거친 것처럼 서로 연관성을 가지며 보완관계를 이뤘다.

무려 25시간에 걸쳐 논의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현재 사상적으로 표류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종합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종합은 서구의 새로운 사조를 모방하거나 동양의 전통 사상으로 복귀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념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용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창조적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이런 창조적 종합을 위해 한국과 러시아는 문화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매우 유리한 입장에 있다. 한국은 수준 높은 동양 문화전통을 이어받았으나 근대 이후 무비판적으로 서구 문화에 노출됨으로써 그 정체성을 상실했고, 러시아 역시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초토화됨으로 인해 사상적 공백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수난과 질곡의 역사를 역이용한다면 오히려 그 결점들을 창조적 종합의 디딤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런 종합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우선 명확한 국가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의 확립이 필요하고 문화적 전통에 대한 자긍심이 고취돼야 한다. 이를 위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선행돼야 하고 이에 부응하는 구체적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

이런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우리는 진지한 의견 개진과 격렬한 논쟁을 거쳐야만 했다. 가령 맨 처음 발표한 차인석 서울대 명예교수의 ‘개혁자유주의론’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지만 러시아 철학자들에게는 여전히 서구 취향의 자유주의를 변형시킨 것으로만 해석됐다. 또한 스치오핀 철학연구소 소장의 현실분석은 분명히 레닌주의적 공산주의를 극복하려는 의도를 보여줬지만 한국의 철학자들에게는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를 고수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현대를 과학주의와 관능적 쾌락주의가 지배하는 암흑시대로 규정하고 탈출의 방안으로 심미적 가치의 부각을 제안하였으나, 그들은 이 시대의 현상 분석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논의에는 이질적인 것보다는 공감하는 부분이 더 많았다. 이것을 오히려 우리는 회의장에서보다는 볼쇼이 극장이나 모스크바 대학의 교정, 희랍정교의 거대한 성당들, 박물관과 만찬 장소, 백화점, 그리고 무엇보다 광활한 붉은 광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세미나 회의실에서 만난 러시아 지식인들의 분위기가 회의주의와 제 3의 방안을 찾으려는 암중 모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그 밖의 공간에서는 영혼의 안식처를 찾으려는 새로운 유형의 신비주의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자유주의의 몸짓을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성당마다 촛불들의 행렬이 가득했지만 백화점은 한산한 편이었다. 모스크바의 거리는 각종 외제 차량으로 물밀듯했으나 너무 노후한 것들이어서 시민들은 지나친 매연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다소 풍족해졌지만 빈부의 차이는 점점 벌어져만 가고 새로운 형태의 계급사회가 형성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교수 월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볼쇼이 극장의 입장료는 명칭만 바뀐 귀족 계급을 조성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직도 제한된 회원만 출입을 허용하는 각종 클럽이나 써클의 회관들도 그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붉은 광장에는 질서정연하게 행군하는 적위대 대신 두리번거리는 관광객들로 북적댔다. 러시아인들은 교조주의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지만 회의주의와 신비주의 사이를 배회하고 있었다. 레닌주의적 사회주의는 무너졌는데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 형성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태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조속한 시일 안에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나 대책을 강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정작 러시아 지식인들의 고민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가 민주화와 근대화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렀고 또 계속 치러야 하는지를 그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를 부러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가 우리를 초청해서 그토록 정중하고 극진하게 대접한 이유였을 것이다.

우리는 회의를 마무리하는 만찬장에서 이번 학술회의가 지닌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그것은 우선 만남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만남은 단순히 몇몇 철학도들의 만남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질적 문화와 가치관과 신념체계의 만남이기도 하다. 둘째 여기에는 창조의 의미가 있다. 이 만남은 새로운 문화, 가치관 및 신념체계를 창출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셋째, 그러한 창조는 동시에 진보를 의미한다. 만약 새로운 창조의 결과가 기존의 이념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라면 만남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우리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 난다는 헤겔의 말을 다시 확인했다. 철학은 현실을 앞질러가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되새긴 것이다.

엄정식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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