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조선시대 풍속화전을 보고]"한국화에 웬 중국인" 혼란

  • 입력 2002년 5월 16일 18시 37분


'조선시대 풍속화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태평성시도'(부분).
'조선시대 풍속화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태평성시도'(부분).
조선시대 화가가 중국의 풍속을 그렸다면 조선 풍속화인가 중국 풍속화인가

‘조선시대 풍속화전’(7월14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서울 경복궁 내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문제의 작품은 바로 ‘태평성시도’다.

이번 전시는 풍속화를 보는 눈을 넓혀주고 그동안의 축적된 연구 성과를 내보이는 전시다. 특히 혜원 신윤복이나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에만 익숙했던 이들에겐 조선시대 풍속화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럼에도 전시실 초입에 걸려있는 8폭 그림 ‘태평성시도’(필자 미상·18세기 후반·각113.6× 49.1㎝)가 눈에 걸린다. 이 그림은 박물관이 처음 공개하는 것으로,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내세운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관람객을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작품 속 풍경이 중국 도시이기 때문이다. 건축물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옷차림 등이 중국식이다.

박물관측은 “조선적인 건축물과 등장 인물이 중국식 도상에 연원을 두고 있지만 개다리소반, 조선식 상차림, 양다리 디딜방아 등 조선식의 기물과 생활 풍습이 등장하기 때문에 조선의 화가가 그린 조선 풍속도”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인물이나 나무의 표현에서 김홍도식의 한국화풍도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선인이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는 미술사학계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 작품을 한국의 풍속화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은순 덕성여대교수(미술사)는 “비록 한국화가가 제작했다고 하나 그 내용은 중국도시 정경이며 중국 옷을 입은 인물들로 구성됐으므로 어떤 점에서 한국 풍속화냐고 묻는다면 얘기가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정병모 경주대교수(한국회화사)는 “이 그림의 인물표현이 단원 화풍이라고 보기에는 무리”라고 지적했다.

물론 조선인이 그렸으니 넓은 의미로 보면, 한국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박물관측은 이런 논란에 대해 아무런 설명문을 붙여놓지 않았다. 관람객들은 ‘태평성시도’속의 중국 건축물에 영문을 몰라 하거나 작품 속의 중국 건축물을 조선의 것으로 잘못 받아들이기도 한다. 관람객의 눈높이를 외면한 전시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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