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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25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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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망은 제자인 재미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리가 25일 금호문화재단에 이 사실을 알려옴으로써 미국보다 한국 언론에 앞서 알려지게 됐다.
1917년 미국 캔자스주 메디신 로지에서 태어난 딜레이는 4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신동연주가 출신. 11세 때 고교에 입학해 IQ검사에서 180을 기록하는 등 ‘천재’로 일찌감치 유명세를 떨친 그는 20세 때 미시간주립대를 졸업한 뒤 줄리아드음대 대학원에 재학하며 솔로연주자와 실내악 주자로 활동했다.
1946년 현악코치생활을 시작한 그는 신시내티대 필라델피아 공연예술대, 뉴잉글랜드 음악원 등을 거쳐 1948년 줄리아드음대에서 훗날 정경화의 스승이 된 명교사 아이반 갈라미안의 조교(Teaching Assistant) 역할을 하며 수많은 신예 현악주자를 길러내기 시작했다.
1970년 줄리아드 정교수직에 취임한 그는 장영주를 비롯해 나디아 살레르노 손넨버그, 미도리 등 현악 천재를 길러내는 ‘신의 손’으로 명성을 떨쳤다. 한국인으로는 장영주 외에 김지연 이유라 권윤경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 바이올리니스트로 대성의 길을 걷게 됐다.
딜레이의 교육방식은 특정한 방식을 고집하기보다 학생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자유로운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으며, 기술상의 난점을 연주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대신 연주의 내면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한번 레슨에 열중하면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고 시간을 할애해 대기하던 학생들을 곤란하게 하곤 했으며, 재능이 엿보이는 제자는 시간과 노고를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은 “딜레이는 학생 각자의 개인적인 애로점까지 묻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려 한 ‘동양적 개념의 스승’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지난해까지 교육활동을 계속했으나 최근에는 지병 악화로 자택에 칩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