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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19일 0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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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저는 1911년 독일 피츨링에서 출생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의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그는 14세 때 독일어 교사로부터 시인 횔덜린의 비극적 생애를 듣고 휠더린의 '히페리온'을 암송하며 문학적 소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뮌헨대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전공하며 니체 헤겔 쇼펜하우어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의 책을 탐독한 그는 대학졸업후 1935년 고향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나치에 가입하라는 압력에 저항해 학교를 떠났다.
1939년 결혼한 뒤 소설 창작을 시작한 그는 2차 세계대전의 와중인 1940년 유명 출판사인 피셔사의 의뢰로 '처녀작 파문'을 완성, 이 소설을 읽은 헤르만 헤세가 병상에서 찬사의 편지를 보낼 정도로 큰 반응을 얻었다.
반나치 활동에 간여하던 그는 첫남편이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하는 불운을 겪은 뒤 그는 1944년 반역죄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집행되기 직전 전쟁이 끝나 석방된다. 석방된 그는 '옥중기'에서 이 때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자신의 내면 풍경을 묘사하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인류의 세계사적 비극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
1950년 발표한 '생의 한가운데'는 당대의 정신 사조와 맞물려 전후 독일 문단뿐만 유럽 문화계를 뒤흔들었다. 자존심 강하며 자립적인 여주인공 니나를 통해 개개인이 삶의 주인임을 일깨워준 이 소설은 실존주의적 사상과 정치적 진보주의를 암시하며 '여성을 통한 구원'이라는 괴테적 이상주의를 결합시켜 여러 계층에서 호응을 얻었고 서유럽 모든 국가의 언어와 한국 일본 중국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소설에서 알콜 중독자이며 몰핀 중독자인 음악가 마우리체는 패배자의 절망감으로 여주인공 니나에게 매달린다. 니나는 작가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자기를 버려둔 채 마우리체의 갱생을 위해 헌신한다.
1953년 그는 소설 다니엘라 에서 인류의 구원이라는 문제를 확대해 전개했으며 한 여성이 가지는 사회적 신념과 그 의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보였다. 그 후 그의 작품은 사회성이 짙은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 1954년에는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를 작곡한 대작곡가 칼 오르프와 재혼했으며 그 뒤 매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왕성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나 훗날 오르프와는 별거에 들어갔다.
현실참여적 발언을 늦추지 않았던 그는 만년에 북한에 경도, 1980년에는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각별한 교분을 맺었다. 작가 황석영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주석이 린저에게 "이 요리는 언 감자로 만든 거요"라고 설명하자 그가 "언 감자로 요리를 만드는 곳은 북한밖에 없을 것"이라고 화답하는 등 "절친했던 관계를 소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쓴 '북한기행문'은 나아가 80년대 국내외 반정부 세력의 '필수교재'로 사용됐다. 이 대학가 운동권 의식화교육의 필수교재였던 적이 있었다. 이 책에서 그는 "북한에 다녀오자마자 김일성의 사상과 실천은 대안이자 제3의 길임을 알게 됐으며, 김일성을 만나고 인류의 미래를 믿게 됐다"고 썼다. 그는 안내원의 말을 빌려 "뛰어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노동자 농민은 과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항상 앉아 있습니다. 주석께서는 인민들이 고요하고 편하게일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라고 소개하는 등 북한 체제에 대한 무비판적 찬양 때문에 한국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다양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는 작곡가 윤이상과도 친분을 맺어 그의 사망후 전기 상처받은 '용'을 집필해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