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 스님 "보리수 나무 아래서 만난 부처님 닮은 사람들"

  • 입력 2002년 2월 15일 14시 36분


'칼라차크라' 법회에 참석한 티베트 불교 승려.
'칼라차크라' 법회에 참석한 티베트 불교 승려.

지난달말 인도 북동부의 불교 성지 부다가야에서는 티벳 불교의 큰 법회 ‘칼라차크라’ 가 열렸다. 이 법회는 달라이라마가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여는 행사로 30여만명이 참석한다. 이 법회에 참석하고 온 서울 양재동 구룡사 주지 정우(頂宇) 스님의 글을 싣는다.

▼관련기사▼

- 달라이라마 스승 링 림포체 22일 방한

[화보]인도 칼라차크라 법회

#부다가야 가는 길

기원전 3세기경 인도 아쇼카왕 때 세워진 부다가야 대탑
불자들은 부처님이 걸어간 깨달음의 길을 한번 만이라도 밟기 위해 인도에 있는 부다가야를 찾는다. 하지만 이곳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부다가야는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 가야시에서 11㎞나 떨어진 곳에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을 떠나 태국 방콕을 거쳐 캘커타 공항까지 비행기로 9시간이 걸렸다. 다시 7시간의 기차 여행을 끝낸 다음에야 부다가야는 마침내 그 자태를 드러냈다.

21일부터 달라이라마가 집전하는 칼라차크라 가 진행되고 있었다. 티벳 불교 승려들은 이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몇 달을 걸어 험난한 히말라야를 넘는다. 법회가 열리는 너른 공지에는 부다가야 대탑이 있고, 그 뒤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나무가 있다. 인도 아쇼카왕 때 세워진 이 대탑은 방추형 9층탑으로 높이만 55m에 이른다. 탑에서 3㎞정도 물러서야 탑의 전체 형태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칼라차크라

칼라차크라는 범어로 시간(Kala)과 바퀴(Cakr)의 합성어. ‘영원한 시간의 수레 바퀴’ 라는 뜻이다. 달라이라마가 직접 집전하는 설법을 전하는 법회로 전 세계 티벳 불교 신자의 기도와 염원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이 법회가 끝날 때 아름다운 오색의 돌가루로 만들어진 만다라를 강물에 띠워보낸다.

이곳에는 기도하는 곳이 따로 없다. 참석자들은 사람들 발에 밟히지 않는 곳이면 오체투지를 하고 경을 읽었다. 그들의 불심이 대탑의 높이보다 더 높다.

법회에 참석한 티벳 승려만 5만∼6만명에 이른다.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불자까지 합하면 30여만명이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는 장관이 연출됐다.

오색의 돌가루로 만들어진 ‘만다라, 탕카 만다라’ 를 갠지즈강에 띄우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생겨난 것은 반드시 없어지므로 아름다움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 물에 사는 용왕에게 만다라 공양을 올려 인류가 자연의 재앙으로 고통받지 않게 하기 위한 바람과 육신을 비롯한 우주 삼라만상이 성스러운 입자, 본질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명시하기 위함이다.

24일 달라이라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 그가 집전하는 나머지 법회가 연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그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기도에 열중했다.

#옴 마니 반메 훔

대화를 나누는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와 링 림포체, 정우 스님(왼쪽부터).
부다가야의 새벽은 ‘옴 마니 반메 훔∼’ 으로 반복되는 티벳 스님들의 낮은 저음의 울림으로 깨워진다. 진언(眞言·진실한 말)은 부처님과 보살의 진실한 말씀을 한 구절에 갈무리한 짧은 문구. 티벳 스님의 진언에는 사람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경건함이 배어 있다.

25일 우리 일행에게는 뜻밖의 인연의 끈이 이어졌다. 달라이라마의 ‘정신적 스승’ 링 림포체, 배우이자 티벳 불교 신자로 유명한 리처드 기어와 스티븐 시걸과 함께 저녁 공양을 함께 한 것. 두 배우는 달라이라마의 제자이기도 하다.

2000년 한국 정부에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허용해 달라는 e메일을 보내기도 했던 기어는 이 자리에서 한국 불교가 지닌 선(禪)의 전통과 분단의 극복에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12박13일간 인도의 성지를 순례했지만 이곳 부다가야는 각별하게 마음에 남는다. 티벳 스님들의 웃음과 눈빛, 그리고 티벳인들의 구도를 향한 간절함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이들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만난 ‘부처님 닮은 사람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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