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한국화가 김선두교수 영화 '취화선'서 60여점 그려

  • 입력 2001년 12월 9일 17시 49분


‘내가 장승업인지, 김선두인지….’

한국 화가인 김선두 중앙대교수(43)는 요즘 이렇게 산다. 조선말 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취화선(醉畵仙)’ 촬영 때문이다. 그는 장승업 역을 맡은 최민식의 대역이다. 최민식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 대신 출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역 장면은 한두 곳이 아니다. 무려 80여 장면에 달한다. 사실상 주연 못지 않다.

촬영은 7월부터 시작됐고 김교수는 일주일에 2, 3회 경기 남양주 서울종합촬영소 야외세트장으로 출근한다.

“저는 손하고 뒤통수만 나갑니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최민식씨가 하죠. 그런데 임권택 감독께서 장승업 그림의 매력을 스크린에 담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장면을 클로즈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시늉만 내선 곤란하고 그림을 제대로 밀도있게 그려야 합니다. 엔지(NG)도 많이 납니다. 설령 제가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해도 카메라 앵글이 맞지 않으면 다시 그려야 하니까요.”

촬영을 하면서 그가 그린 그림은 완성작만 60여점. 장승업이 생전에 그렸던 그림과 거의 똑같이 그려야 한다. 그렇다면 그 그림은 김교수의 작품일까, 장승업의 작품일까.

“글쎄요. 일단 제 그림이 아니고 장승업의 그림이라고 봐야죠. 그러나 똑같이 그린다고 해도, 촬영장 분위기상 그것은 작업실에서 꼼꼼하게 그대로 재현하는 모사와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 그림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가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한국화가 이종상 서울대 교수의 추천 때문. 김교수의 힘이 넘치는 묵선을 평소 눈 여겨본 이교수가 임 감독에게 추천한 것이다. “평소 장승업에 대해 그림은 잘 그렸지만 중국풍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번에 촬영을 하면서 끝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위대한 화가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는 이번 촬영으로 인해 개인전 계획을 내년으로 미뤘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장승업의 삶을 배웠고 임감독의 프로정신을 배웠습니다. 이 영화가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는 장승업 이야기니 만큼 저도 내년에 더 훌륭한 화가로거듭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교수는 서민들의 삶을 소재로 한 채색수묵화를 즐겨 그렸고 중앙미술대전 대상,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석남미술상을 수상했다. 촬영은 1월 중순까지 계속된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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