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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5일 2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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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는 15일 프랑스문화원에서 5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훤칠한 키에 여윈 얼굴을 지닌 그는 수줍움을 타는 듯 인터뷰 내내 책상을 응시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문학관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탈정치적이라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30여편에 달하는 자기 작품을 모두 ‘참여소설’로 규정해 눈길을 끌었다.
“저의 세대는 참여문학의 전통을 세웠던 사르트르 혹은 카뮈의 후예들입니다.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차별과 인권 경시를 소설을 통해 다룬다는 점에서 제 모든 작품은‘참여소설’이분명하지요.”
▼제3세계 문화에 애정▼
아프리카 모리셔스섬에서 태어난 르 클레지오의 아버지는 영국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 그는 1968년 독립한 모리셔스 국적을 지금도 갖고 있다고 밝히는 등 제3세계 문화에 남다른 애정을 나타냈다. 그는 “세계 각국의 문화는 어느 나라든지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설은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역사라는 뜻의 ‘히스토아(histoir)’는 ‘이야기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소설가란 모든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이런 이야기들이 모여 역사가 되는 것이죠.”
▼테러에 전쟁 맞대응 반대▼
이어 그는 “어떤 형태로든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억압하는 것은 절대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대해 그는 “아무리 미국이 테러로 심한 피해를 보았다고 해도 전쟁으로 맞대응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묻자 그는 “프랑스와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내 작품이 지속적으로 번역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져 전부터 한국에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3년전 한국의 소설가 이청준씨를 프랑스에서 만난 적이 있다”면서 “그의 소설 ‘예언자’를 읽어 보았는데 환상적인 요소와 사실적인 요소를 잘 배합한 놀라운 작품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1994년 프랑스 ‘리르’잡지가 실시한 설문조사)로 꼽히는 르 클레지오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거명되고 있다. 소설 ‘홍수’ ‘섬’ ‘사막’ ‘황금물고기’ 등을 비롯해 평전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등 작품 대부분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돼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르 클레지오는 22일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네차례 강연회를 갖는다(16일 오후4시 서울 세종로 교보생명빌딩 10층, 17일 오후3시30분 이화여대 인문관111호, 18일 3시 서울대박물관 강당, 19일 오후4시 전남대). 주제는 보카치오(14세기 이탈리아 작가, 대표작 ‘데카메론’)와 로트레아몽(19세기 프랑스 상징시인, 대표작 ‘말도르노의 노래’)의 작품에 나타나는 ‘자유’의 의미, 문학과 세계화 문제 등이다.
▼낭독회-강연등 행사▼
그는 내한 기간 중 작품 낭독회(17일 오후5시30분 서울 중구 봉래동 프랑스문화원)도 갖고 현재 집필중인 신작 소설 ‘혁명’의 내용 일부를 직접 낭독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르 클레지오의 방한에 맞춰 그의 처녀작 ‘조서(調書)’(1963)가 재번역되어 민음사에서 출간됐고, 단편 ‘성스러운 세도시’(1980)와 장편소설 ‘우연-앙골리 말라’(1999)가 문학동네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