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I 한국정부와 '악연']정부 "내정간섭" 반박…공방 되풀이

  • 입력 2001년 5월 18일 18시 27분


정부와 국제언론인협회(IPI)간의 언론자유를 둘러싼 내정간섭 논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IPI가 언론사 세무조사 등 최근의 한국 언론상황에 대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보낸 데 대해 정부가 즉각 내정간섭이라며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IPI는 그동안 수차례 한국의 언론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언론자유를 촉구했고 이에 대해 정부는 즉각 반박해 왔다. 그러나 IPI가 발표한 성명이나 서한 내용의 일부만 IPI한국위원회에서 보관하고 있을 뿐 정부에서는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의 자료만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나 국정홍보처에 확인한 결과 언론관련 정부 부서가 수차례 바뀌는 과정에서 IPI 관련자료가 대부분 없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IPI한국위원회에 따르면 IPI는 1961년 ‘민족일보사건’에 이어 1964년 정부의 ‘언론윤리법’ 제정 시도 때 언론자유 침해 가능성을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IPI가 한국언론 상황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1974년 벌어진 동아일보에 대한 박정희(朴正熙)정권의 광고탄압 사건이다. IPI는 1975년 1월15일 동아일보 광고탄압을 비난하고 동아일보의 언론자유 쟁취 노력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IPI는 이어 같은 해 2월5일 전 세계 언론에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탄압 실상을 알리고 지원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IPI한국위원회 관계자는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뿐만 아니라 1960, 70년대 IPI가 한국언론과 관련해 입장을 표명하면 정부는 즉각 내정간섭이라며 반박했으나 정부의 반박 원문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한 이후 1990년대 김영삼(金泳三)정부 때까지 IPI는 한국 언론상황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 IPI한국위원회 관계자는 “1980년대에는 IPI 본부가 내분으로 활동이 미약했던 데다 IPI 한국 회원들도 한국의 언론탄압 사례를 본부에 보고하지 않아 성명 발표 등이 없었다”고 말했다.

IPI와 정부의 갈등은 김대중 정부 출범 후 1999년 당시 홍석현(洪錫炫) 중앙일보 사장이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구속되면서 다시 불거졌다.

IPI는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와 홍사장 구속은 언론탄압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구속 취하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오홍근(吳弘根) 국정홍보처장 명의로 내정간섭이라고 반박하는 서신을 IPI에 보냈다. 보광그룹사건과 관련해 IPI와 정부는 두차례 서신을 교환하며 공방을 벌였다.

이어 2000년 2월 조선일보의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관련자 도청의혹 제기 사설에 대해 검사 12명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자 IPI가 언론자유 침해 가능성을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서도 국정홍보처는 즉각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이처럼 IPI가 한국 언론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는 즉각 내정간섭이라며 반박해왔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

▼한나라 "정부, IPI권고 받아들여야"▼

한나라당 장광근(張光根)수석부대변인은 18일 국제언론인협회(IPI)에 대한 정부의 공개 질의서 발송에 대해 “정부가 IPI 지적에 대해 무례한 내정간섭이니 하며 공개 질의서까지 보내 감정적 대응을 하는 것은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장부대변인은 성명에서 “국제 사회가 ‘비판 언론 재갈물리기’ 등의 지적을 하며 한국의 언론 탄압 사태를 우려하고 있는데 대해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언론 자유 회복 조치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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