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출신 현각스님 현정사 주지 취임

  • 입력 2001년 4월 22일 23시 55분


현정사 주지에 취임한 현각스님
현정사 주지에 취임한 현각스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 현각(玄覺·속명 폴 뮌젠·37)스님이 22일 주지에 취임한 현정사(現靜寺)는 경상북도 깊은 두메산골에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영주시 부석면 어래산(御來山) 자락.

―어떻게 주지를 맡게 됐나요.

“지난해 10월말 백일기도를 하려고 충남 예산 수덕사의 암자에 짐까지 다 옮겨놓았지요. 그 때 ‘제 책보고 감명 받았다’는 한 보살님이 찾아왔어요. ‘새로 지은 절의 주지로 모시고 싶다’며 ‘일단 완공단계에 있는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와봤는데 절이 깊은 산골에 있어 참선하기 좋았어요. 2월에 숭산(崇山)큰스님께 여쭸더니 주지 소임을 허락하셨어요.”

현정사는 예사 절이 아니다. 대웅전을 포함한 4채의 건물은 무형문화재 신응수 대목장(大木匠)이 짓고, 탱화는 유명한 석진 스님이 맡았다. 지난 5년 동안 절 짓는 돈은 ‘정광명장(鄭光明藏)’으로 불리는 50대의 여신도가 댔다. 정씨는 본명을 밝히기를 거부하면서 “현각 스님이 순수하고 욕심이 없어 보여 절을 맡겼다”고 말했다.

―선방 돌아다니던 스님이 갑자기 주지라니요.

“현정사는 신도가 없어요. 천도재 같은 거 안 지낼 거고요. 아주 먼 데라 그냥 스님들만 있어요. 조용해서 공부하기 좋아요. 제 소임은 선원장(禪院長)에 가까워요. ‘부처님 오신날’이 지나면 곧 첫 하안거(夏安居·여름 동안의 선 수행)가 시작될 텐데 외국인 스님들이 이 곳에서 정진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릴 거예요. 방학중에는 학생들을 위한 선(禪)수련회도 열어볼까 합니다.”

22일 열린 현각 스님 주지 취임 및 선원 개원법회에는 500여명이 참가했다. 화계사 조실로 있는 숭산 큰스님을 비롯해 그의 외국인 제자들도 거의 빠짐없이 찾아왔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젠센터’ 선원장 대광(大光)스님, 화계사 선원장 무심(無心)스님, 무상사 주지 오진(悟眞)스님 등이 눈에 띄었다. 모두 절을 둘러보면서 ‘쿨(cool)’을 연발했다.

현각 스님은 최근 한 달 동안 미국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뉴욕 그리고 남미의 브라질 상파울루 등을 돌면서 한국교포를 상대로 법문을 하고 2주 전 돌아왔다.

―미국에서 가족들은 만나봤나요.

“잠깐 만났어요. 셋째형 패트릭이 저처럼 삭발을 하고 있어 깜짝 놀랐어요. 형은 컬럼비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에서 일한 증권전문가인데 석 달 전 출가한다고 머리를 깎았대요. 이건 정말 스쿠프(scoop·특종)예요. 형은 불교에 대해 많이 물었고, ‘한국에 갈 수 있느냐’고도 물었어요.”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맹목적인 믿음은 진정한 종교가 아니에요. 선은 ‘마음 공부’예요. 마음을 닦아야 해요. 머리 다듬고 신발 닦을 줄 알면서, 왜 마음 청소는 하지 않는 거죠.”

그는 어린이날인 5월 5일 이화여대에서 법문을 할 예정이다.

<영주〓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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