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에콰도르 등 이민 각광

  • 입력 2001년 3월 5일 18시 58분


◇"선진국서 기죽느니 후진국으로…"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주부 박모씨(34)는 대기업 과장인 남편과 상의 끝에 이민을 떠나기로 했다. 박씨네 가족이 새 보금자리로 선택한 곳은 남미 에콰도르. "왜 미국이나 캐나다가 아닌 에콰도르냐고요, 선진국에 가서 막일하면서 주눅들어 살기 싫어요. 남편과 저 모두 대학도 나왔고 남편은 번듯한 직장에서 과장님 소리를 들으며 사는데 갑지가 하층민으로 전락하면 적응하기 힘들지 않겠어요.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는 현지에 있는 영어권 국제학교에 보내거나 미국 아니면 캐나다로 유학 보낼 생각이에요."

더 나은 생활환경을 찾아 나서는 이민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피지 에콰도르 등 우리보다 경제 여건이 떨어지는 곳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민=선진국'이란 등식이 이들에겐 성립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열렸던 해외 이주 이민 박람회장에는이 같은 ‘이민의 틈새시장’에 주목하는 새로운 ‘이민 상품’이 선보여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남들이 많이 가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외면하고 교포들도 별로 없는 낯설디 낯선 곳을 찾는 이유는 뭘까. 정든 땅을 떠나는 이민은 놀러가는 것이 아니다.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이유는 그만큼 진지하다.

우선 이들 나라는 이민 허가를 받기가 쉽다. 미국 캐나다 등과 달리 2∼3년간 준비하고도 허가를 못받아 발이 묶일 염려가 적다. 또 물가가 싸기 때문에 초기 정착비를 비롯한 생활비도 적게 들어 소자본으로 모험을 할 만한 가치가 있다. 현지인들이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하거나 따돌리는 설움도 덜하다.

또 다른 매력으로는 개발이 덜된 만큼 한몫 벌 수 있는 ‘기회’도 많다는 것.

박람회장에서 만난 회사원 정모씨(37·경기 수원시)는 카자흐스탄을 이민국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처녀지’라는 이미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업 인프라가 전혀 구축돼있지 않은데다 이민이 활성화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 해볼 만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이가 아직 없어 교육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거든요.”

피지로 이민을 가자고 부모를 조르고 있는 대학생 박성희씨(22·서울 송파구 가락본동)도 “미국이나 캐나다는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것”이라며 “한국인이 많지 않은 낯선 곳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발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체면을 중시하고 프라이버시 개념이 없는 한국인의 특성을 감안하면 교민이 적어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바로 이민을 가기에는 ‘기반’이 약한 사람들이 남미나 피지를 종착역이 아닌 ‘거쳐가는 역’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한국보다 경제력이 떨어져 의료 서비스 수준이나 교육여건 등은 좋지 않다. 현지 교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초중고교생을 영어권 국제학교에 보내거나 대학생은 미국이나 캐나다로 유학보내고 있다.

남미이주공사 강영호 지사장은 “낯선 곳일수록 위험 부담도 크므로 반드시 현지 답사를 하고 이모저모 따져본 뒤 이민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후진국 매력

1.이민허가 까다롭지 않아

2.물가싸고 정착비 등 저렴

3. 소자본으로 모험해 볼 만

4. 미-캐나다 행 '중간역'으로

◇어떤 곳이기에…

새로운 이민지로 떠오르는 3곳을 남미이주공사의 도움으로 소개한다.

▽피지-영어권…어학연수국 인기

남태평양에 있는 경상도 크기의 대표적 휴양지. 인구는 90만명, 교포 수는 약 500명 가량.

은퇴 후 연금 생활자들이 기후가 좋고 생활비가 적게 드는 이곳을 많이 찾는다. 골프 유학생들이 이곳을 거쳐 호주로 유학가기도 한다. 영어권이어서 어학 연수국으로도 인기.

학교는 초등 6년, 중등 6년제다. 국제학교 수업료는 미화로 월 400달러 정도.

1억원 이상의 자산 증명이 필요하다. 45세 이상은 이 자산 가운데 1억원을 피지에 송금해야 하고 45세 미만은 3000만원 이상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영주권 수속 기간은 6개월 이상.

▽에콰도르-370만원 예치하면 '자격'

남미 북서쪽에 있다. 인구 1250만명에 면적은 남한의 2.8배.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과 인접해있으며 스페인어를 쓴다.

교민 수는 한때 5000명선이었으나 대부분 미국이나 캐나다로 2차 이민을 떠나 지금은 1500명선. 인건비가 싸 많은 교포가 봉제공장을 경영한다.

미화로 3000달러(약 370만원)만 중앙은행에 예치하면 한달 뒤 이민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목돈이 없는 젊은이들이 정착하기에 좋다.

학교는 초등 6년, 중등 6년제. 영어권 국제학교는 월 수업료가 미화로 500∼700달러 정도. 스페인어를 쓰는 사립학교는 월 150달러.

▽카자흐스탄-알마티시에 교민 1000여명

중앙아시아에 있고 면적은 남한의 27배. 카자흐스탄어와 러시아어가 공용어. 올해부터 한국인에게 이민을 허용했다. 교민이 가장 많은 곳은 알마티시로 1000명 정도.

의류 봉제 등 제조업 관련 시설을 현지로 이전하는 조건이면 재산과 무관하게 영주권을 내준다. 수속 기간은 3개월 가량 예상. 국제학교 수업료는 월 400달러 정도.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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