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의책]손에 잡힐듯 아련한 유년기의 추억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39분


한겨울 교실 난로 위의 도시락. 어떤 아이는 데워지지 않을 세라, 어떤 아이는 밥이 타버릴 세라 걱정에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고향 집 푸른 이끼 낀 기왓장, 시냇가 버들강아지의 하얗고 보드라운 솜털….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아련한 유년의 추억들. 40대 작가 두 사람이 아스라한 기억의 비늘을 주워모아 책으로 엮어냈다. 각각 에세이와 산문소설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지만, 거울 느티나무 ‘테레비’ 등 등의 키워드를 통해 기억의 찌를 드리웠다 낚아올리는 솜씨는 비슷하다.

구효서의 에세이 ‘인생은 지나간다’는 강화도 한촌에서 보낸 60년대 유년기의 추억담이다. 때론 한밤중의 방사(房事)까지 확성기 오동작으로 집집에 중계되던, 정겨우면서도 미소를 지닌 마을.

작가는 어느날 정확한 출생시각을 알고자 폐가가 된 고향집을 찾는다. ‘아침 볕이 막 문턱에 닿고 있었다’라는 어머니의 회상만을 단서로.

“아침볕이 내 이마와 어깨 위에 떨어져 내렸다. 눈이 부셨고 어깨가 따뜻해졌다. 어디선가 뎅, 하는 괘종시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이 부셔서인지 몰라도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박일문은 산문소설 ‘추억’에서 불씨를 가지고 놀다 집을 태울 뻔한 기억, 여인네들의 겨울철 뜨개질, 작가의 영혼을 포로로 만들었던 그리운 여선생님 등 경북 상주에서 보낸 유년시절을 띄워올린다. “오십이 되면 절로 들어갈란다”라고 뇌까리던 아버지, 작가 자신의 출가생활 등이 책 곳곳을 수놓는다.

때로는 동일한 소재가 나란히 추억의 만화경에 삽입된다. 물엿을 찾아 젓가락으로 이 단지 저 단지 속을 찍어먹다 양잿물을 삼키고 뒹굴던 기억 (인생은 지나간다), 시렁위 조청을 꺼내려 재봉틀을 놓고 발돋움하다 퍼석, 단지만 깨고 할머니 목소리에 으앙! 하고 터뜨린 울음…. (추억)

▽인생은 지나간다/구효서 지음/222쪽/7500원/마음산책▽

▽추억/박일문 지음/234쪽/7000원/실천문학사▽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