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찰나'의 승부 광고의 사회학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8시 32분


■'지루한 광고에 도시락을 던져라'/ 마정미 지음/ 272쪽 9000원/ 문예출판사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선영아 사랑해”

“아부지, 나는 누구예요?”

‘순간’에 승부를 걸어 성공한 광고의 언어들이다. 시간 속도 몸 유머 이미지…. 이 시대의 광고를 상징하는 개념인 동시에 이 사회를 지배하는 개념이다. 광고는 이 시대와 사회를 가장 빨리,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속도와 공간 극복을 상징하는 이동통신 광고를 통해 n세대의 의식과 디지털 문화를 읽어 낸다. 그러나 저자는 또 한편에서 이 세상이 여전히 아날로그로 만들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미련할 정도로 애처롭게 가족애에 호소하는 국제전화 001과 002, 우정과 추억의 무서운 힘을 보여주는 인터넷 사이트 ‘아이러브스쿨’, 오랜 기억 속에서 60년대 청춘영화에 대한 향수를 다시 끌어낸 ‘오비라거’ 등은 바로 아날로그 문화의 힘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광고 모델인 ‘영웅’은 빠른 변화 속에 위험사회에서 이 시대가 변함없이 영웅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펩시콜라의 펩시맨, 박세리 신드롬, 코넷(Kornet)의 쌈장이나 LG싸이언의 조피디 등은 이 시대가 기다리는 영웅을 상징한다.

광고를 읽어내는 저자의 눈은 문화 현상 전반을 광고와 같이 속도감 있는 이미지로 읽어 낸다. 코엑스몰 백화점 백화점 퓨전레스토랑 등에서는 생산자의 문화를 해체하고 소비자의 축제가 만들어지는 소비 공간을 찾아낸다. 또한 그 곳을 오고가는 천차만별의 사람들에게서는 노동의 고단함과 계층간의 위화감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가 하면, 동시에 소비의 허영에 지갑을 털게 하는 위장된 소비자의 축제의 현장을 발견하기도 한다. 책장 사이로 지나칠 정도로 많은 이미지와 지적 허영들이 광고처럼 가볍게 스쳐간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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