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위선을 걷어낸 그림… 그 순수의 당당함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8시 59분


작가 김점선(54)은 현재 우리나라 여성화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그림만 팔아서 먹고 사는 작가다. 그 앞에는 천경자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의 그림과 인생은 단순 솔직하다. 유학을 다녀 온 적도 없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싸움닭’이자 ‘순(純) 토종화가’다.

일평생 학과시험엔 떨어져 본 적이 없지만 면접시험엔 붙어본 적이 없다는 얘기를 그는 아무 거리낌없이 털어 놓는다. 얼마전 한 전시회에서 내로라 하는 인사들에게 “그림을 보면 되지 뭘 설명해 달라느냐. 백화점에서 넥타이를 고를 때 그냥 마음에 들면 사는 것이지 설명을 듣고 사느냐”고 일갈해 주최측을 당황하게 만든 적도 있다.

같은 개성 출신이자 이웃인 작가 박완서선생은 ‘나는 지금껏 김점선처럼 남의 눈치 안보고 자기가 생각한 것을 생으로 드러내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위악적인 것하고는 다르다. 그가 위선을 떨 줄 모르기 때문에 나도 그 앞에서 위선을 떨 엄두를 못낸다. 그가 그리는 방법은 말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대상이 풍기는 아리까리한 위선을 걷어내고 직통으로 본질을 포착하기 때문에 사실적인 그림보다 훨씬 더 백일홍은 백일홍 답고, 맨드라미는 맨드라미 외에 다른 아무 것도 될 수가 없다’고 쓰기도 했다.

4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조(02―738―1025)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회에는 예의 그 간결 솔직 단순하면서도 푸근하고 정감있는 작품들이 선보인다. 아리리스 백합 맨드라미 말 거위 사슴 코끼리 등….

그는 “화가는 자기 그림을 산 사람이 500명을 넘으면 평생을 먹고 사는데 나는 86년 이미 500명을 넘었다”고 예의 당당함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는 “84년 당장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그림을 팔아 정부미 두 포대를 살 때가 그립다. 그림을 팔았다고 해도 누가 즐거워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라며 2년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 했다.

<오명철기자>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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