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200여명 "폐허된 밤섬 이젠 생태낙원 되길…"

입력 2000-09-22 18:46수정 2009-09-22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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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모래사장 곳곳에서 배를 만들던 목수들의 요란한 망치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것 같아. 동네 아이들은 바로 앞 강변에서 멱을 감곤 했는데….”

22일 오후 다른 실향민 200여명과 귀향제를 지내기 위해 밤섬을 찾은 김성영씨(75·서울 마포구 창전동)는 키 높이 만큼 자란 수풀로 뒤덮인 섬 곳곳을 돌아보며 희미한 기억을 더듬었다.

그 생김이 밤알을 닮았다 해서 ‘율도(栗島)’로 이름 붙여진 밤섬은 60년대까지만 해도 60여가구 450여명의 원주민이 대대로 살아온 ‘유인도’였다. 그러나 68년 여의도개발이 시작되면서 자갈과 모래채취를 위해 섬이 폭파됐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실향민이 된 주민들은 폐허가 돼버린 고향땅이 내려다보이는 인근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일대로 옮겨져 30여년간 ‘수구초심(首丘初心)’의 한을 달래 왔다.

올해로 3회째인 귀향제는 밤섬 폭파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고향 방문행사. 최근 밤섬이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는 바람에 지척의 고향땅을 먼발치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주민들이 해마다 고향땅과 ‘재회’를 나눌 수 있는 기회다.

이날 황포돛배와 바지선을 탄 김씨 등 200여명의 실향민은 마포구 한강시민공원 망원선착장을 출발, 1년 만에 고향땅을 방문해 제를 지낸 뒤 옛 고향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3대째 밤섬에서 살았던 김씨는 매년 고향땅을 밟을 때마다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당시 주민 대부분은 조선, 도선업이나 땅콩 채소농사 등을 지어 생계를 꾸렸지. 전기는 커녕 수돗물도 나오지 않아 호롱불을 켰어. 한강물을 식수로 이용했지만 도둑과 질병이 없어 순박한 주민들이 한가족처럼 오순도순 살던 낙원이었는데….”

그러나 마을의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김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피란길에 올랐던 것. 당시 경기 시흥 인근으로 피란갔던 김씨는 폭격으로 부모와 두 형제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핏줄을 잃은 아픔을 삭이며 고향에 돌아와 살던 김씨 등 마을주민에게 집단이주 통고장이 날아든 것은 68년 1월. 여의도개발을 위해 마을을 폭파해체한다는 ‘날벼락’이었다. 고향을 잃게 된 주민들은 반대했지만 결국 이불과 가재도구들을 배에 싣고 고향땅을 등진 채 한강을 건너야 했다. “강 건너편에서 섬이 폭파되던 모습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생생해. 어떤 이는 땅을 치며 통곡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지.”

이주 후 생업을 잃은 김씨 등 주민들은 오랜 세월 공사장에서 전전하며 막노동으로 힘들게 가게를 꾸렸다. 슬하에 3남매를 두었던 김씨는 “20여년 전 사고로 두 아들이 잇따라 세상을 뜬 것도 고향을 떠난 때문”이라며 후회할 때가 많다.

김씨는 “몇 년 새 정착지인 와우산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주민들 상당수가 뿔뿔이 흩어져 안타깝다”며 “고향 땅을 보다 자주 밟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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