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쇼핑객 五感 자극해야 지갑이 열린다

  • 입력 2000년 8월 25일 19시 48분


미국을 대표하는 서점 ‘반즈 앤 노블’의 어린이책 코너는 특별하다. 서점이라기보다는 아이들 놀이터 같다. 카페트가 깔려 있어 꼬마들이 뒹굴며 논다. 이 책 저 책 꺼내서 어질러 놓아도 뭐라는 사람도 없다. 나중에 직원이 조용히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쇼핑 과학(The Science of Shopping)’을 창시한 저자라면 이 책의 ‘쇼핑 성공법칙’ 9조를 들이댈 것이다. ‘아이들을 상품과 놀게 하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상품은 부모의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실제로 ‘반즈 앤 노블’에서 아이가 집어든 책을 외면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게다가 아이가 책과 노는 틈에 자기가 볼 책을 골라 사기도 한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좋은 물건만 진열하면 많이 팔리는 시대가 아니다. 24시간 홈쇼핑 프로그램, 연중무휴 인터넷 쇼핑몰이 편리함과 저가 공세로 유통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기존의 매장은 속수무책일까?

저자는 ‘고객을 사로잡는 쇼핑 매장에는 성공 법칙이 있다’며 이들을 달랜다. 고객의 편의를 위한 ‘사소한’ 배려로 매출액을 크게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백화점은 의자만 몇 개 늘려도 매상이 20∼30%나 증가했다. 쇼핑을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퍼포먼스’로 만든다면 성공은 떼 논 당상이다.

이런 확신에 찬 어조 뒤에는 ‘빵빵한’ 데이터가 있다. 매장에서 수 만명의 고객을 미행했고, 수 만시간의 비디오 테이프를 찍고 분석한 결과다.

여성 고객이 남자친구와 동행해 쇼핑하는 시간은 여자 친구와 쇼핑하는 시간의 절반이라는 자료까지 있다.

여느 ‘과학’ 법칙처럼 결론은 간결하다. 쇼핑객은 ‘매장 맨 앞쪽을 기피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매장내의 광고는 1m 이내 것만 본다’ ‘손이 자유로워야 물건을 산다’….

말장난 같은 제안도 있다. ‘은행 옆에서는 장사를 하지 마라. 굳이 하려면 쇼윈도에다 거울을 설치하라’. 딱딱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는 금융기관을 지날 때는 무의식적으로 걸음이 빨라지지만, 대신 거울에 비친 활기찬 거리 풍경이 고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는 것.

특히 가장 주목할 대목은 여성과 남성의 소비패턴 변화를 다룬 3부다. 저자는 남성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21세기 쇼핑의 관건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가사를 분담하는 남성과 독신남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보다 ‘가격표는 덜 보고, 지갑은 더 잘 열고, 점원을 귀찮게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매장,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은 여성 고객에 관심을 갖길 권한다.

컴퓨터 매장을 찾는 여성은 적지만 실제로 물건을 구입하는 비율은 남성보다 높다. 웹 쇼핑시에도 남성은 여러 사이트를 돌며 구경하는데 바쁘지만 여성은 한 사이트에서 사고 싶은 물건만 클릭하고 컴퓨터를 끈다.

▼'쇼핑의 과학' / 파코 언더힐 지음 / 신현승 옮김/ 세종서적/ 335쪽 1만2000원▼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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