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준비 부족" 약국 50% 필요한 藥 없다

  • 입력 2000년 6월 26일 19시 34분


우여곡절 끝에 7월 1일 의약분업이 시행되지만 준비부족으로 시행 초기 국민에게 불편과 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의약분업 초기 일정기간의 ‘계도기간’ 설정을 검토하기로 한 것은 바로 이로 인한 혼란을 막으려는 조치로 보인다.

의약분업은 의사의 진료행위와 약사의 조제행위를 철저히 구분하는 제도로 양측이 상대방의 영역을 서로 존중하고 협조해야 성공적인 정착이 가능하다. 하지만 임의진료와 대체조제 등을 둘러싼 불신과 대립의 골이 너무 깊어 제도 시행에도 불구하고 양측이 상당기간 ‘불안한 동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이로 인한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올 전망이다.

▽약 없는 약국〓정부와 대한약사회는 1차로 17일, 2차로 24일까지는 전국 1만8500여 약국에 대한 약 공급을 끝내고 26일부터 1주일 가량 약국별로 모의테스트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제약업계와 약품 도매상들은 의료계의 집단폐업으로 의약분업의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약국에 대한 약 공급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에 따라 전체 약국 중 절반 가량만이 의약분업 시행에 필요한 약을 준비했고 나머지는 아직까지도 약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약국 중 20% 정도는 아예 주문도 하지 않은 상태다.

의사가 처방전을 써주더라도 약국에 약이 없으니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원하는 약을 구하러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병의원 준비 부족〓병의원은 의약분업 뒤 처방전만 써주면 되므로 약국보다 준비할 사항이 적지만 엿새간의 폐업으로 인해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정은 특히 중소병원이나 동네의원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병의원에서는 환자가 약국에 갖고 갈 처방전을 확보해 놓아야 하는데 집단 폐업 투쟁 때문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의료보험연합회가 임시방편으로 처방전을 인쇄해서 전국 병의원에 200장씩 배포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병의원은 현재 보유중인 의약품(1000억원으로 추정)을 본격적인 분업 시행 이전에 처분하기 위해 환자에게 약을 직접 지어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왜 의사가 약을 짓느냐’ ‘필요하지 않은 약을 쓰는 것 아니냐’며 항의하는 환자와의 마찰이 예상된다.

복지부는 대형병원의 경우 환자가 원하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내는 팩스센터를 설치토록 권장하고 있지만 고려대병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직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

▽의약품 배송센터 미비〓약국에 원하는 약이 없을 경우 약국은 가까운 의약품배송센터에서 약을 배송받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배송센터가 마련되지 않은 지역이 있는데다 의약품 배송료를 약국이 부담할지, 환자가 부담할지가 결정되지 않아 시행 초기 혼란과 불편이 우려된다. 서울의 경우 도봉구 노원구 등은 아직도 배송센터가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대책과 계도기간〓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약국이 원하는 약을 빨리 공급하도록 한국제약협회, 다국적의약산업협회, 의약품도매협회를 독려하고 있다.

계도기간이 설정되면 준비가 안된 병의원에서는 약사법대로 분업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약국이나 병의원 중 한곳만을 선택해 이용할 수도 있다. 정부는 국공립병원이나 대형병원의 경우엔 분업원칙을 지키도록 하면서 준비 안된 곳은 분업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지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이 기간에 의약계, 시민단체와 약사법개정을 위한 충분한 논의를 한다는 방침이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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