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김병종/중국 혁명의 한 가운데 선 여인

  • 입력 2000년 6월 16일 18시 50분


▼'20세기 중국을 빛낸 위대한 여성, 송경령' 이스라엘 엡스타인 지음/한울 펴냄▼

근대 중국에서 송(宋)씨 집안 세 자매는 너무도 유명하다. 특히 숭칭링(宋慶齡·송경령), 숭미링(宋美齡·송미령) 자매는 각각 쑨원(孫文·손문)과 장제스(蔣介石·장개석)의 아내로서 뿐 아니라 독자적 삶에 있어서도 20세기 ‘두 개의 중국’을 빛낸 가장 위대한 여성이었다.

송경령은 혁명가 손문의 비서로 들어가 후에 그의 아내가 된 여인이었다. 당시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너무도 많이 난데다가 손문에게는 이미 아내와 자식까지 딸려 있어서 경령의 부모는 완강하게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했지만 결국 그녀는 위험과 고난에 가득찬 혁명가의 아내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제 왕조를 타도하고 공화국을 세워 초대 총통이 되었던 손문은 중국의 ‘조지 워싱턴’으로 불린 사람이었다. 그는 근대적 중국의 건설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원세개 등의 구 봉건 관료체제와 투쟁하였는데 이 와중에서 두 사람은 도쿄의 한 일본인 친지의 집을 빌어 결혼을 해야 했다.

훗날 경령은 ‘결혼식이 치루어진 후에도 양친은 눈물로 애원하며 그 결혼을 취소해 줄 것을 호소했을 정도였다’고 회상하였다. 손문은 경령과 단 10년이라는 짧은 결혼 생활을 함께 한 후 세상을 떠났지만 경령은 그의 사망 후 무려 60년 가까운 세월을 남편 손문의 혁명 목적에 충실하게 살았다. 인간 송경령의 진가는 남편 사후에 더욱 빛을 발하였다.

중국과 서구의 국제 명사들과 두루 교류하면서 놀라운 우아함과 온화함 그리고 견고한 원칙과 높은 용기, 여성적 아름다움과 국제적 교양 등을 발휘하면서 국제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책은 만년의 송경령이 자신의 사후, 저자에게 전기를 써 줄 것을 여러 번 부탁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가 왜 굳이 이스라엘 엡스타인이라는 서구 지성인에게 자신의 생애 이야기를 부탁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송경령 자신의 개인사 뿐 아니라 복잡하게 굴절된 중국 근현대사를 놀라운 균형 감각과 냉정한 객관성에 입각해 기술하고 있다.

수려하면서도 간결한 문체 속에 송경령의 우아한 아름다움과 인품의 향기, 그리고 지성미 같은 것을 함축성 있고 여운 있게 전해줌으로써 국제주의자였지만 동시에 애국주의자였던 그녀의 생애가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너무도 극적인 중국 근현대사의 순간 순간들이 스냅사진처럼 생생하게 잡혀지고 있다. 모든 것이 즉물적이고 인스턴트화 되어 날로 경박해져 가는 요즘, 깊고 온후하면서도 강인한 한 정신을 만나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전기이면서 전기 이상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이양자 옮김. 상하 각 404, 424쪽. 각 2만5000원.

김병종(화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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