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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17일 2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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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 감옥 사형장 문에서 동북쪽으로 1.5㎞ 떨어진 야산 일대가 당시 처형되거나 수감 중숨진 수인들이 묻힌 묘지다. 현지 주민들은 17일 묘지 가운데 일부 지역이 1990년대초 건축자재 매립지로 이용됐다고 말했다. 일부는 현재 주택지로 바뀌기도 했다.
뤼순 감옥을 관할하던 일본 당국은 수인들의 유해를 둥근 통 모양의 나무 관에 구부정하게 세운 자세로 안치한 후 봉분 없이 매장했으며 일부는 관 1개에 두 명씩 넣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관동청요람’과 ‘관동국요람’ 등을 인용한 중국측 자료에 따르면 뤼순 감옥 수감자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접수한 1907년부터 1940년까지는 연인원 44만3000여명, 1945년 8월까지는 50만명이 넘는다. 고문 등으로 감옥에서 사망한 수감자도 1936년까지 150명을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져 수인 묘지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일본이 패망한 뒤 수인들의 무덤을 일부 발굴해 ‘제국주의 침화(侵華)유적 보관소’라는 항일기념관으로 개조한 감옥 건물에 전시하고 있다. 다롄(大連) 등의 조선족 동포들에 따르면 1980년대초 북한 관계자 7명이 안의사의 묘소를 찾기 위해 뤼순을 방문한 적도 있다.
<뤼순〓이종환특파원> ljh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