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 시대 문학의 운명]작가 독자 경계 무너진다

  • 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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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멀티미디어가 지배하는 새 밀레니엄. 문학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쇠퇴 사멸할 것인가,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꾀할 것인가. 21세기를 맞아 첫 호를 발행한 문예 계간지들이 다양한 형태로 문학의 미래를 진단했다.

‘21세기 문학’에 실린 ‘21세기 한국문학, 그 난제들’에서 조남현 서울대교수는 디지털 미디어의 ‘쌍방향성’에 주목했다. 아날로그 시대에 작가가 텍스트 생산의 전권을 행사한 탓으로 문학이 ‘일방성’과 ‘중앙집권주의’적 특성을 갖게 된 데 비해, 디지털 시대에는 작가와 독자가 함께 작품이나 텍스트를 완성시켜 나가며 작가의 위치는 ‘교사나 계몽자’의 위치에서 독자와 수평적인 관계로 재정립될 수 있다는 것.

김성곤 서울대교수는 같은 잡지에 실린 ‘뉴 미디어 시대의 문학’에서 뉴미디어가 가져올 ‘경계 해체’ 현상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쌍방향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의 미디어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소설과 비평, 시와 산문, 심지어 문학과 영상의 경계까지 차츰 허물어져 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런 경계해체 현상은 작가와 독자, 예술과 일상의 경계도 무너뜨려 나갈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이렇게 경계가 무너져 나가면 어떤 예술이 탄생할까. 소설가 복거일은 문예중앙 봄호에 실린 ‘이야기는 영원하다’에서 그 가능성 중 하나를 짚어낸다. 그는 작가가 궁극적으로 ‘다중지각 예술형식’(Multisensory art forms)의 한 부분을 맡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미래의 예술형태는 사람의 모든 지각들을 자극하는 형식을 띠게 되며, 작가는 ‘지금 영화나 방송극에서 대본작가가 맡은 것과 비슷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

시 소설 등 개별 장르가 마주치게 될 변화에 대해서도 다양한 전망이 나왔다. 최동호고려대교수는 ‘문학과 의식’ 에 기고한 ‘하이테크 디지털문화와 현대시의 존재 전환’에서 “근대 이후 시는 고유의 구술(口述)적 성격을 잃고 활자 텍스트에 갇혀버렸지만,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매체를 최대한 활용하면 시의 구술적 전통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래로부터 시작된 시가 인쇄술 혁명 이후 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됐지만 하이퍼텍스트와 멀티미디어의 시대에는 ‘문자’를 뛰어넘는 생생한 전달매체와 생명력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같은 잡지에서 최유찬 연세대교수는 찬반 양론이 분분한 판타지 문학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는 최근 판타지문학이 멀티미디어에서 촉발된 상상력을 소설 속에서 구현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진단하고, 앞으로 컴퓨터게임 등에서 기원하는 멀티미디어적 상상력이 새 시대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소설의 운명을 떠맡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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