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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2월 11일 2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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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렇게 묻는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눈으로 미국사를 바라본 적이 있는가. 인디언을 빼놓은 미국의 영혼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아메리카에서 소외 당해온 아메리카 인디언과 그들의 역사. 1492년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수난의 길로 들어선 인디언의 역사. 흑인 문제 같이 정치 쟁점화되지 못했고, 그래서 더 비극적인 인디언사.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다시 거론할 필요가 있느냐”고.
그런 사람에게 우선 이 책을 권한다. 인디언들이 당한 수난의 구체적인 실체를 알지 못한채 수난의 역사라는 결론만 머리 속에 집어 넣고 다니는 우리의 습성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17세기부터 유럽인의 본격적 침탈로 인해 식민지로 전락한 인디언의 땅 아메리카. 영국의 팽창이 심화되던 18세기 동부지역을 빼앗기고 서부로 쫓겨간 인디언들. 그렇게 찢기고 고립되면서 19세기 끝내 몰락의 길로 접어든 그들.
이 책 ‘미국사에 던지는 질문’은 인디언의 비극적 역사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구체적인 역사를 다룬 것이어서 인디언에 관한 사료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인디언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각과 역사학계의 연구 방식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담고 있다. 저자는 애리조나주립대 역사학교수인 피터 아이버슨과 시카고 뉴베리도서관 부관장인 프레데릭 혹시를 비롯해 노스웨스턴 인류학교수인 제임스 브라운, 애리조나주립대 종교학교수인 케네스 모리슨, 아메리카 인디언 국립박물관장인 리처드 웨스크 주니어, 콜로라도대 법학교수인 찰스 윌킨슨 등 16명.
이 책은 인디언의 비극을 들여다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 배경을 이루는 미국인의 사고와 문화의식을 뒤집어 본다. 바로 미국사 뒤집어보기다. 여기에 이 책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특히 백인중심의 미국 주류역사학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 그렇다. 그것은 미국인의 보편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이다. 그래서 비판이 사뭇 도전적이고 매력적이다. 그 도전은 미국의 주류역사학이 내세웠던 개념을 뒤집는 일. 서구문명, 프런티어, 황야 등 미국 역사학계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 온 것들의 이면에 숨겨진 인디언 억압사를 들추어 낸다.
그 중 하나인 황야의 개념을 보자. 황야 하면 말 타고 질주하는 인디언들이 떠오른다. 황야는 자연이고 그 황야를 질주하는 인디언도 자연이다. 인디언은 곧 자연의 일부다. 유럽출신의 미국인들에게 인디언은 이처럼 자연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언뜻 미국인들이 마치 인디언의 자연친화적인 삶을 존중해주고 인디언들의 순결한 정신을 존중해주는 의미로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라고 필자들은 말한다.
왜 그런가. 신대륙을 개척한 유럽계 미국인에게 그 자연은 보조해야 할 대상이기에 앞서 개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황야를 없애고 거기에 도시를 건설해야 했다. 황야 자연과 한 몸인 인디언 역시 당연히 몰아내야고 개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황야는 멋진 개념이 아니라 인디언 억압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도록 하는 일종의 ‘장치’였다는 것이 필자들의 판단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아직도 인디언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한다. 이 책은 바로 미국인들의 그같은 무의식을 뒤집기 위해 쓰여졌다.
필자들은 미국의 역사학 연구 방법론에 대한 자기 반성으로 나아간다. 미국인들이 인디언사를 쓰면서도 그 시기 구분이나 명칭 사용이 지극히 미국 중심적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인디언과 백인의 관계를 기준으로 시기 구분을 하고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현실을 무시한 채 인디언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짚고 넘어간다. 인디언들을 환경보호론자, 이상적 자유주의자, 소외계층의 상징물로 부각시키려는 분위기나 인디언들의 삶과 정신에서 지혜와 초월적 아름다움 평화로움 등을 끌어내려는 분위기를 예로 든다. 이는 분명 인디언들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백인의 우월주의, 즉 인디언의 자연을 지배해버린 백인의 서구 문명을 과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인디언의 삶과 정신을 낭만적으로만 보려는 시각은 교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들의 견해다. 1960, 70년대 미국의 인디언에 대한 폭발적 관심 역시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백인의 인디언 청산 정책에 맞섰던 인디언들의 저항의 목소리였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인디언을 적극적인 주체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폄하되고 왜곡되어온 인디언사.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한 하나의 노력으로 필자들은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인디언의 고유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자란 젊은 인디언들, 특히 토착언어를 할 줄 아는 인디언들을 훈련시켜 그들이 직접 그들의 역사를 쓰게 해야 한다” 고. 인디언의, 인디언에 의한, 인디언을 위한 역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사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건 인디언사만이 아니라 수많은 소수 민족, 약소민족의 역사에 관한 문제로도 이어진다. 그 질문은 또한 백인 중심의 미국사에 익숙한 우리에게도 유효할 것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