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아톰@비트'/상상력+열정=디지털시대 생존법

  • 입력 2000년 2월 11일 19시 55분


▼ '아톰@비트' 정진홍 지음/푸른숲 펴냄 ▼

“디지털은 느낌이다!”

과연 그럴까. 차가운 0과 1의 조합, 무감각한 정보의 고리로 연상되는 비트(bit)의 세계. 우리가 느껴온 디지털 세계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아니, 그런 선입견은 문명 전환기의 입구만을 들여다 본 결과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다가오는 밀레니엄 문화를 ‘주술과 감응의 문화’, ‘느낌의 문화’로 규정한다. 새 밀레니엄은 누구나 방해 받지 않고 꿈을 꾸며, 욕망을 자유로이 확장시킬 수 있는 ‘감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단언이다.

저자가 논의의 전제로 삼은 것은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으로 정의한 맥루한의 명제. 눈의 확장으로 신문이, 귀의 확장으로 라디오가, 발의 확장으로 자동차가 나타났지만 이들은 낱낱의 감각능력을 확장시킨데 그친 ‘모노미디어’였다는 것. 그러나 다양한 감각능력을 통합할 수 있는 인간은 새로운 세기를 맞아 비로소 본래의 총체적 감각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계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 신세계는 ‘아톰(Atom·원자)’으로 상징되는 물질계를 모델로 ‘비트’가 의미하는 정보계를 통합한 새로운 문화의 기반 위에서 열린다. 그렇다면, 멀티미디어가 친숙한 환경이 될 21세기의 인간형은? 느낌의 인간, 감성의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 느낌의 시대에 가장 강력한 무기는 ‘상상력’이다. 나아가 ‘패션(fashion)과 패션(passion)의 결합’이야말로 새로운 시대 가치 창조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변화에 대해 열려 있으면서 열정을 갖춘 인간, 그것이 새 밀레니엄이 요구하는 인간형이다.

하지만 상상력과 감성을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과연 새로운 시대에 허용될 것인가. ‘2000년대는 속도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빌 게이츠의 예언처럼, 인간은 끊임 없는 속도의 요구에 직면하지 않을까. 속도가 인간의 느낌과 상상력을 제약하고 말지 않을까…. 그러나 저자는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신선하게 우려를 뒤집어 버린다.

“속도가 느림의 즐거움을 앗아갔는가? 아니다. 진정한 속도는 느림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여유의 모태이다. 우리가 속도를 내는 이유는 느림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 모든 전망은 사뭇 유쾌하다. 그러나 단지 책의 일부분일 지도 모른다. 21개의 장에서 저자는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 ‘디지털 감성 산책’을 즐긴다. 그 관심사는 환경의 중요성, 전통 굿의 멀티미디어적 성격, 타자(他者)와의 관계에서 비로소 설명될 수 있는 ‘시간’의 성격 등 다양하다.

이런 서술방식은 새 밀레니엄 문화를 ‘섞이되 차이와 다름은 여전히 보전되는 것’ 즉 퓨전(fusion)으로 규정한 저자의 설명과도 들어맞는다. 인터넷상의 하이퍼텍스트로 구현되기에 더욱 적절한 텍스트일지도 모른다.216쪽 8000원.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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