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북한법 50년, 그 동향과 전망」/신영호-이장호교수

  • 입력 1999년 6월 18일 19시 27분


금강산 뱃길이 열려 통일이 성큼 다가선듯 하더니 서해교전으로 모처럼의 평화무드가 얼어 붙었다. 햇볕과 냉전 사이를 오가는 남북관계. 갈등의 상대이자 통일의 동반자인 북한. 우리는 북에 대해 얼마나 깊히 이해하고 있는가?

최근 7명의 법학자가 공동발간한 ‘북한법 50년, 그 동향과 전망’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나침반이 될만한 연구서다.

법제도라는 틀을 통해 북한을 조망해 북한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를 압축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 공동저자 이장희(외국어대·국제법) 신영호교수(고려대·민법)의 대담으로 ‘서해교전’을 비롯해 다양한 시사점을 짚어본다.

▽이장희〓정치적 해석이 아닌, 법적 해석의 태도를 갖게 되면 북한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또다른 시선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의 ‘서해교전’도 법적 맥락에서 파악하면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남북 양측이 92년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11조에 따르면 육지에서는 군사분계선을 불가침선으로 합의했지만 해상경계선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을 유지하되 그 정확한 영역구분에 관해서는 ‘계속 협의한다’는 단서를 달아놓았다.

현재 우리가 해양경계선으로 간주하는 북방한계선(NLL)은 59년 정전합의 때 북측 동의없이 결정됐고, 북한은 73년 유엔군사정전위 이래 계속 문제제기를 해왔다. 따라서 법률적인 맥락으로 얘기하자면 서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이 지역에서의 충돌은 영해침범이 아니라 기존의 관리구역에 대한 북한측의 ‘월선(越線)’이라고 정의해야 한다.

▽신영호〓북한의 국제법연구가 상당한 수준에 있구나 하고 놀랄 때가 많다. 국제분규가 생길 때면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도모하는 방향으로 법리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최근 북한법의 변화는 북한의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가늠케 해주는 것같다. 있었던 사실의 재확인만이 아니라 미래에 이렇게 하겠다는 강령적 요소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98년에 개정된 헌법이다. 합법적인 사유재산을 인정함으로써 시장경제를 위한 근거를 확실히 한 것이나 공민의 ‘거주 여행의 자유’를 인정한 점은 획기적인 변화다.

▽신〓개정 헌법37조도 변화를 드러내는 중요한 조항이다. 이 조항은 ‘국가는 우리나라 기관, 기업소, 단체와 다른 나라 법인 또는 개인들과의 기업합영과 합작 특수경제지대에서의 여러가지 기업창설운영을 장려한다’고 밝히고 있다. 나진―선봉지구같은 경제특구를 앞으로 더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북한의 정책의지를 엿볼 수 있다. 최근 일련의 법개정을 통해 북한은 중국 못지 않게 개인의 경제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굴곡이 있더라도 개방기조는 계속 유지될 것같다.

▽신〓서해교전처럼 급박한 것은 아니지만 통일 후 이산가족 결합의 법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시급한 과제다. 예컨대 기혼자인 국군포로가 북한에서 새로 가족을 꾸렸다가 남한의 가족과 통일 후 다시 만난다고 하자. 남쪽에서의 결혼이 먼저이므로 남한가족만을 인정해야할 것인가?

▽이〓그런 점에서 양측 법률의 통합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해보아야 할 것같다. 한 마디로 통일을 한다고 해서 북한법이 다 없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 독일의 경우 낙태법이나 ‘여성 지위에 관한 법’은 서독보다 오히려 동독의 법이 앞섰기 때문에 동독의 법으로 통일됐다. 통일한국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가 생길 수 있다.

▽신〓맞는 얘기다. 일례로 가족법의 양자제도에 관한 조항은 북한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여성의 지위에 관한 조항도 우리보다 결코 못하다고 볼 수 없다.

▽이〓혁명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면 결국 ‘법에 의한 지배’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무적 차원에서는 이에 대해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우선 양측이 서로 합의한 것만이라도 이행해야 한다.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법률실무협의회를 가동하도록 규정했지만 지금까지 양측 법률가들이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우선 양쪽 학자들간의 법령교환이라도 이뤄져야 한다.

▽신〓아직까지도 북한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본의 조총련계를 통해 어렵게 자료 하나를 구한다든지, 1차적 자료를 얻는 데만도 애를 먹는다. 북한이 자신들의 법령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꺼리다보니 ‘북한에 무슨 법이 있나, 장식에 불과한 것 아니냐’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우선 어떤 법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만이라도 순조롭게 이뤄져야 한다.

■「북한법 50년, 그 동향과 전망」이장희 김상균 신영호 장명봉 최종고 한인섭 정주환 지음/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 419쪽 ■

수년간 북한법을 연구해온 학자들이 공동집필한 연구서. 북한법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향후 변화방향을 전망했다. ‘북한법의 역사적 형성과 체계’ ‘북한헌법 50년’ ‘북한 형법 반세기’ ‘북한법의 변화와 전망’ 등의 내용. 아울러 민법 경제법 소송법 국제법 등을 소개. 부록으로 실린 헌법 형법 민법 가족법전의 자료적 가치도 크다. 02―396―2590(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정리〓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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