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심수관家 소재 창작극「그 불」, 예술혼 불길 담아

  • 입력 1999년 6월 3일 20시 09분


20여년간 전통의 창조적 파괴와 재해석을 시도해온 중견연출가 손진책(극단 미추대표). 그가 이번에는 도자기에 담긴 예술혼을 풀어간다. 지난해 7월 동아일보사와 일민미술관 주최로 열린 ‘4백년만의 귀향’전의 주인공 심수관을 소재로 11일부터 공연하는 창작극 ‘그, 불’. 지난해 5만3천명의 관중에게 격찬을 받은 ‘4백년만의 귀향’전의 불길을 되살려 볼 각오다.

‘지킴이’ ‘오장군의 발톱’등의 작품에서 전통소재에 천착해온 손진책이 심수관(14대)을 처음 만난 곳은 93년 일본 가고시마였다. 국악작곡가 박범훈과 함께 심수관가(家)의 도공사(陶工史)를 듣던 그는 “이런 소재를 두고 여태…”하며 무릎을 쳤다.

심수관의 작품세계에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지 5년. 지난해 전시회에서 심수관을 다시 만난 그는 ‘밀린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작품구상에 골몰했다.

“1598년 초대 심당길이 일본으로 끌려가며 미처 못가져간 불씨를 심수관이 남원에서 다시 채화해가는 것을 보고 ‘완성된 예술로의 지향’이라는 거대한 모티브를 발견했습니다.”

손진책의 손길로 거듭나는 심수관은 그러나 일본의 억압을 버텨낸 의지의 조선인이나 꺼져가는 민족혼을 되살린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초대부터 이어져온 예술혼의 명맥, 현재의 15대 심수관(심일휘)이 겪을 ‘도혼의 계승’에 대한 인간적 고뇌가 손진책을 잡아끌었다.

모티브는 14대 심수관이었지만 결코 심수관을 다룬 논픽션은 아니라는 얘기. 이미 잘 알려진 그들의 가족사만으로는 극의 긴장감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것이 손진책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연극 ‘그, 불’의 주인공은 15대 심수관이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어린 심수관’은 그후 고뇌의 나날을 보낸다.

명문 쿄토대를 졸업하고 한때 언론인을 꿈꿨던 그는 ‘고리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현대인으로 살고싶은 적도 있었다. “핏줄에 흐르는 도공으로서의 실존과 예술혼의 재발견이 연극의 핵심”이라고 손진책은 강조한다.

음향효과의 달인 김벌래가 맡은 음악도 도공들의 고뇌와 예술혼을 부각시키기에 안성맞춤일 듯. 김종엽(14대 심수관) 이기봉(15대〃)등이 출연한다.

‘그, 불’에서는 80년대 MBC마당놀이를 통해 인기를 모았던 ‘손진책표’ 볼거리가 다시 펼쳐진다.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문예회관대극장에서 화수목 오후7시반, 금토 4시반 7시반, 일 3시 6시. 0351―879―3100(극단 미추).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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